장마 오는데… 광화문 비둘기들은 어디서 밤을 보내나

지난 25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근처 세종로 파출소 앞. 머리 색깔이 알록달록 제각각인 관광객들이 여행가방을 끼고 앉아 뭔가를 기다린다. 버스가 도착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다. 비둘기 열 마리가 10여m 거리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 기자도 비둘기를 온종일 관찰했다.

관광객이 흘리고 간 과자 부스러기 등 ‘떡고물’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 후텁지근한 날씨에 놈들의 깃털은 땀으로 떡졌다. 검은색과 회색이 어지럽게 섞인 털, 군데군데 흰색이나 청록색을 띠기도 한다. 먹을 게 없으니 여기엔 더 볼일이 없나 보다.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만남의 광장은 100m쯤 떨어진 동화면세점 건물 앞. 정해진 코스일까. 일사불란했다.

장마 오는데… 광화문 비둘기들은 어디서 밤을 보내나

지난 26일 저녁 옛 서울역사 처마 아래에 비둘기들이 쪼르르 모여 앉아 밤을 나는 모습. 귀소본능이 있는 비둘기는 해가 뜨면 다른 곳으로 ‘출근’했다가 해가 지면 돌아온다. /장근욱 기자

비둘기는 도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새다. 가로수, 공원, 전봇대, 광장 등 일상 곳곳에서 마주친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흰 비둘기 수천 마리를 날려보내며 대회 개막을 알렸다.

평화의 상징도 과유불급이다. 비둘기가 과잉 번식하며 도심에 넘쳐난다. 서울 하늘을 수놓던 흰 깃털은 좀처럼 대물림되지 않는 열성 형질. 이제 비둘기들은 지저분하고 처치곤란인 흉물이 된 것이다. 박희천 조류생태연구소장은 “도시 비둘기는 과거에 절벽과 바위 틈에 살던 ‘바위 비둘기’의 후손”이라며 “도시의 콘크리트와 시멘트 구조물을 바위 벽처럼 여기고 갈라진 틈이나 교각 등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둘기 똥은 강한 산성이어서 건물과 차를 부식시킨다. 잡식성 비둘기는 음식 쓰레기를 먹으면서 병균을 옮긴다. ‘날아다니는 쥐’라는 오명마저 얻었다.

이 때문에 비둘기는 2009년 유해 조수로 지정됐다. 개체 수를 줄여야 하는 생물로 못 박은 것이다. 공공기관이 앞장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둘기가 선호하는 서식지인 한강 교각 대부분에 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설치했다”고 했다. 그러자 민가를 덮친다. 에어컨 실외기와 건물 벽 사이 틈을 노린다. 비둘기 퇴치 업체 관계자는 “한번 둥지를 튼 곳은 위치를 기억하고 다시 오기 때문에 퇴치법이 간단치 않다”며 “틈새를 막고 뾰족한 가시 구조물로 비둘기 접근을 차단한다”고 했다.

곧 장마가 올 텐데 쫓겨난 비둘기는 어디로 가는가. 비둘기도 집이 있는 조류다. 옛날엔 멀리 떨어진 사람 사이를 오가며 편지를 운반하는 고마운 전서구(傳書鳩)였다. 광화문 광장의 비둘기 한 마리가 크게 푸덕거리며 날아오른다. 집으로 가는 걸까. 그 뒤를 눈으로 쫓았다.

비둘기가 숨은 곳은 맙소사, 역사적 장소들이다. 과거의 유물은 종종 우리 눈 밖에 나기 쉬운 법. 25일 오후 8시 광화문 비둘기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높이 30m짜리 8층 건물 벽면에 세로로 10m, 가로로 100m에 달하는 대형 LED 전광판인 ‘광화벽화’가 있다. 건물과 전광판 사이 틈으로, 망설임 없이 쏙 들어간다. 그곳에서 또 다른 비둘기가 나왔다. 곧장 광장 분수로 날아와 목을 축인다.

인기 있는 ‘명품 아파트 단지’는 구 서울역사. 1925년에 지어져 지금은 미술관 등으로 쓰고 있다. 이날 밤 10시, 도시의 조명이 닿지 않는 처마 아래, 비둘기들이 아치형 창문의 창틀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멀리서는 연달아 점이 찍힌 듯 보였다. 그 속에 앉아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깃털을 다듬으려는 듯 고개를 뒤로 향한다. 기어코 옆 비둘기를 건드린 모양. ‘푸드덕!’ 잠시 층간 소음(?)이 일었다.

장마 오는데… 광화문 비둘기들은 어디서 밤을 보내나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 아래 비둘기들이 앉아 있다. /박상훈 기자

비둘기 개체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각 구청 민원으로 접수된 개체 수는 2019년 7233마리에서 작년 9429마리로 약 30% 증가했다. 불만도 쌓여 간다. 시민들이 제기한 민원은 5년 전 682건에서 작년 1432건이 돼 2배로 급증.

비둘기와 공생은 우리의 선택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류학자인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비둘기 떼를 그물망으로 덮쳐 잡는다면 ‘일망타진’할 수 있다”면서도 “윤리적으로 대량 살상을 꺼리는 여론이 있어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비둘기 분변에 고건축물이 피해를 보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은 비둘기와의 평화를 택했다. 먹이를 주는 것을 금지하거나 불임 성분이 든 먹이를 준다. 개체 수를 줄이고 도시 밖으로 거처를 옮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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