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고향 사람 있으니 병원 가기 안 무섭네요”

대구 첫 ‘이주민 의료 통역’

“옆에 고향 사람 있으니 병원 가기 안 무섭네요”

이주민 의료 통역인 임소현씨(왼쪽)가 지난 20일 대구 서구 대구의료원에서 베트남 이주민과 의료진의 대화를 통역하고 있다.

민간단체서 통역가 양성

한국어 능숙한 이주민이

서툰 이주민 병원 동행

5월 현장 통역만 125건

산부인과·내과 등 많아

“지자체서 지원 있었으면”

“혈압이 너무 높은데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나요?”

지난 20일 대구 서구 대구의료원 내과 진료실에서 검사기록을 살피던 의사가 앞에 앉은 40대 남성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의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때 진료실에 있던 임소현씨(38)가 유창한 베트남어로 통역해 환자에게 말을 전했다.

환자 잡반카인(49)은 임씨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로 2년여 만에 병원을 처음 찾았다는 그는 “오래전부터 아팠지만 일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서 “통역을 해주는 고향 사람이 있어서 든든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임씨는 이날 병원을 발빠르게 누비며 환자 5명의 ‘입’과 ‘귀’가 되어주었다.

대구에서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의료통역 지원이 눈길을 끌고 있다. 다만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시민단체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동행)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해 5월부터 공공의료 통역가를 양성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어가 능숙한 이주민 출신에게 의료용어 등을 익히게 해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이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통역을 돕게 하는 것이다. 동행은 대구·경북지역 이주민 단체들과 행동하는의사회 등이 연대한 단체다. 지난 2월까지 진행된 시범사업을 통해 통역인 7명이 배출됐다.

동행은 지난해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진행한 공모에 선정되면서 올해부터 3년간 1억5000만원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의료 통역인들은 한층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소정의 활동비도 지원받고 있다.

올해는 지금까지 19명이 전문교육을 마쳤다. 이들은 지난 3~5월 한국의 의료제도와 산재보험과 직업병, 전문의 강의 등 20강(60시간)의 교육을 받았다. 출신 국가는 베트남·중국·일본·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미얀마 등이다.

의료 통역인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이주민의 의료기관 방문 시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지난달 기준 번역 활동(11개 언어) 22건, 전화 통역 13건, 현장 통역 125건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로 산부인과·내과·정형외과·이비인후과·치과 등의 진료가 많았다.

올해 공공의료 통역 교육을 수료한 임씨는 베트남 출신으로 2008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후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임씨는 “저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아파서 힘들었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워 병원을 못 갔던 기억이 많아 통역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며 “최근 새벽 3시가 넘어 베트남 산모에게서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산부인과에 급히 데려가 순산하도록 돕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행 측은 의료 통역인들이 이주민의 의료접근성 향상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의료비 부담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의료기관 이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양선희 동행 대표는 “이주민들은 의료기관을 쉽게 찾지 못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고, 병원을 찾더라도 진료 중 다른 질병을 발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콜센터 등의 형태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지자체가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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