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냐 파국이냐…푸틴 방북 이후 한·러 관계 어디로 가나

북·러 협약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속에서 유추한 양국 관계

관리냐 파국이냐…푸틴 방북 이후 한·러 관계 어디로 가나

북한은 지난 6월 19일 북·러 정상회담차 평양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북한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주간경향] ‘제재는 무력화했고, 우방과의 관계는 강화했다.’ 주어를 생략하고 보면, 성공한 외교다. 문제는 이 문장의 주어가 북한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이 됐다. 특히 회담 결과물인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의 의미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사실상 군사동맹이라는 주장과 과대 해석이라는 반박, 신냉전의 상징이라는 주장과 이해에 따른 일시적 결속이란 주장이 맞섰다.

단순한 관점 차이 같지만 어느 쪽 분석을 따르느냐에 따라 정부 대응이 달라진다는 점이 문제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6월 23일 “러시아가 앞으로 어떻게 응해오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무기의) 조합이 달라질 것”이라며 “최근 러시아는 조금씩 레드라인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경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의 파국은 아니지만, 실질적 조치가 있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러시아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 직후인 지난 6월 20일 “(한국이)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 전투 구역에 보내는 것은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면, 어떤 식의 반대급부든 북한으로 전달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제 주목할 점은 한국이 정해뒀다는 ‘레드라인’이다. 북·러 조약 체결은 ‘왜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 아닌 가까워진 정도’인지, ‘무엇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인지’ 등이 궁금증을 만든다. 북·러 조약을 둘러싸고 대립 중인 주장들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사실상’ 군사동맹은 어떻게 나왔나

북·러 정상회담을 두고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협력의 성격이다. 한국에서는 북·러 조약 제4조가 이른바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으로 알려지며 ‘사실상’ 군사동맹이란 논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조문을 상세히 뜯어 보면,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선, 국가 간 관계에서 ‘자동개입’이라는 것이 가능한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 제3조에서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했을 뿐이다. 만약 북·러 조약에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 있다면 이는 어떤 동맹도 뛰어넘는 군사동맹이 된다.

관리냐 파국이냐…푸틴 방북 이후 한·러 관계 어디로 가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단독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이 밝힌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 연방법에 따르면 러시아의 군사력을 해외에 투사하려면 푸틴이 아닌 상원의 결정이 필요하고, 유엔헌장 제51조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정으로 자위권이 제약될 수도 있다”며 “결국 자동개입도 아니고, 오히려 푸틴이 유사시 개입하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달아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적어도 ‘자동개입’ 조항 때문에 북·러가 ‘군사동맹’을 체결했단 논리에는 비약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북·러 조약의 핵심이 군사협력에 있다는 해석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군사협력을 배제하면 과거 북·러 간 맺은 조약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이 안 된다”며 “조약 서명 주체인 김 위원장이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한 만큼 그동안 간접적으로 이뤄져 왔던 군사협력이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레드라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정부의 애매한 발표를 이해할 수 있다. 북·러 조약만으론 한국을 적대시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한·러관계가 어디까지 악화할 것인지 역시 추론해볼 수 있다.

신냉전? 일시적 협력?

군사협력이 명시적 흐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북한에서 러시아로의 방향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인적·물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 북한은 돌파구가 되고 있다. 북·러 간 무기 거래는 이미 미국 군사 관련 전문기관 등에 여러 차례 포착됐다. 주로 러시아 국적 선박이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 내에 있는 각 항으로 오가는 식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6월 17일 이 컨테이너에 탄약이 실려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러 조약은 이러한 흐름을 노골화한다. 명분은 지난 5월 31일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제공한 일부 무기를 사용해 러시아 국경지역을 공격하는 것이 허용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6월 20일 해당 조치는 러시아 전지역으로 확대됐다. 이를 두고 푸틴은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북·러 조약 제2조, 3조는 어느 한 곳이 ‘무력침략을 당할 수 있는 직접적 위협이 조성될 경우 상호 협력’에 관해 다루고 있다. 북한 무기를 활용한 우크라이나 공격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 배경이다. 북·러는 파병까지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6월 25일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해당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관리냐 파국이냐…푸틴 방북 이후 한·러 관계 어디로 가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 승선해 비행갑판을 시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반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제공되는 것은 명시적이지 않다. 군사기술, 제재 해제 등과 같은 무형 자산이 반대급부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6월 25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보좌관은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를 두고 “국제사회가 이 체제의 변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가치’를 중심으로 한 ‘신냉전의 시작’이냐, 위기 타개를 위한 ‘일시적 협력’이냐로 해석이 갈린다. 신냉전의 시작이란 관점에서 보면, 한·러관계는 사실상 기대할 것이 없다. 현재 해당 관점에 입각한 분석이 힘을 얻는 중이다. 반면 소수지만 일시적 협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 위원은 “2021년 기준, 북·러 교역은 4만달러 수준인 반면 한·러는 272억달러였다”며 “푸틴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횡단철도, 북극항로 활성화 등에도 한국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러시아가 김정은을 껴안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필요한 탄약을 얻고, 북한은 유사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실리를 쫓은 것일 뿐 가치연대 식으로 확장하는 것은 상황을 오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언론, 전문가 등이 신냉전의 시작이란 분석을 쏟아내는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태도를 보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위기 타개를 위한 일시적 협력으로 보는 관점에 가깝다. 불과 지난 6월 초만 해도 한·러관계 개선 기대감이 한껏 높았다.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해법을 통해 외교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김찬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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