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한 조선 여인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한 조선 여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 [일본 위키피디아]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한 조선 여인

극적인 오누이 상봉

“내 성은 김 씨인데 부친 이름은 김세원이고 모친은 홍 씨다. 내 동생 손등에는 푸른 반점이 있고, 다리에도 붉은 반점이 있는데 당신에게도 그런 게 있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순푸로 올라오세요. 만나서 확인해 봅시다”

절대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이에야스의 거처 순푸성에 살고 있던 조선 출신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 줄리아 오타아는 어느 날, 남동생과 흡사한 사람이 초슈번(야마구치현) 하기라는 곳에서 ‘운나키’란 이름으로 초라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녀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납치되어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여성이었다. 동생이 조선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는 깜짝 놀라서 즉시 동생에게 편지를 띄운다. 꿈인가 생시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누나의 편지를 받아본 동생 ‘운나키’는 순푸로 달려와 감격적인 오누이 상봉을 하게 된다. 헤어진 지 16년만의 일이었다. 오누이 상봉 자리에서는 이에야스도 참석하여 운나키에게 자신이 입던 옷과 말 그리고 칼을 하사하는 등 융숭하게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초슈번의 영주 모리 가문은 운나키에게 봉토 200석과 무라타 야스마사란 일본식 성과 이름을 새로 부여하고 무사로서 봉직하도록 배려했다.

오타아는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 전란 중에 한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자기 집 마당에 굴을 파고 숨어 지내다가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14세 때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후 그녀는 조선침공 선봉장이며 대표적인 카톨릭 다이묘(영주)였던 고니시 유키나가(세례명 아우구스티누스)의 수양딸이 되어 그의 부인 기쿠히메(세례명 주스타) 밑에서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자라며 줄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598년 히데요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일본군은 조선 땅에서 철수한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천하 주도권을 놓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진영 동군과 히데요시 측근 참모그룹 중심의 이시다 미츠나리 진영 서군이 격돌하는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가 벌어져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한다. 패배한 서군 측에 섰던 유키나가는 참수형을 당하고 그의 집안은 몰락하게 된다. 수양부모의 몰락으로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오타아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당시 절대 권력자로 떠오른 이에야스였다. 그는 조선 양반집 딸 출신으로 재색을 겸비하고 요리솜씨도 뛰어난 그녀를 자기 곁에 두고 각별히 총애했다. 교토, 에도, 순푸 등 거처를 옮길 때마가 항상 그녀를 데리고 갔다. 이를 두고 일본에 와 있던 카톨릭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이에야스의 후궁이나 첩이 아닌가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몇 해 전, 운나키 가문의 종손 무라타 노리오 씨는 오타아가 운나키에게 보낸 육필 편지와 이에야스가 운나키에게 하사했던 옷, 칼 등 그동안 집안의 가보로 보존해 온 것들을 고향 아마구치현 하기시에 기증했다. 하기시는 이 유물들에 대해 면밀한 고증을 한 끝에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난해 4월 일반에 공개했다. 오타아의 편지 내용 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져 한일 카톨릭 교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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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오타아 초상화 [야후재팬 화상]

가시덤불 속의 장미

1611년 무렵은 오타아 인생에 있어서 하늘의 별을 딴 순간이었던 듯싶다. 순푸는 카톨릭 신자들에게 평화롭고 복된 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612년, 상황은 급변하면서 카톨릭 박해의 폭풍이 몰아쳐왔다. 카톨릭 신자 오카모토 다이하치란 인물이 이에야스의 직인을 위조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그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이에야스 신변 경호를 담당하는 조총부대장 등 측근들이 카톨릭 신자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에도막부는 카톨릭 선교사들이 카톨릭 다이묘들과 결탁하여 정권전복을 꾀하려 한다고 보고 이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조치는 이듬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순푸, 에도, 교토의 교회가 파괴되고 무사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카톨릭 신앙은 금지됐다. 그의 가신들 중 카톨릭 신자는 삭탈관직 등의 처분을 받고 처형당했다. 오타아도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 만약 그녀가 카톨릭 신앙을 포기하고 이에야스의 측실이 된다면 극형이나 유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상의 왕을 위해 하늘의 왕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평생 성모 마리아처럼 동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했다. 교토의 로드리게스 신부는 그런 그녀를 가리켜,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가시덤불 속의 장미’라며 극찬했다.

이에야스는 자신이 그토록 총애하던 여인, 오타아를 차마 극형에 처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를 순푸성에서 추방하여 순푸와 에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즈시마란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가 그 이후에는 유배에서 풀어줬다. 1622년 프란시스코 파체코 신부의 ‘일본발신’ 편지에 따르면 그녀는 코즈시마를 나와 오사카로 이주했다가 나중에 나가사키로 갔다고만 적혀있을 뿐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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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오타아가 동생에게 보낸 육필편지 [하기시 제공]

이에야스의 심모원려

1603년 에도막부를 설립한 이에야스는 140여년에 걸친 내전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카톨릭 세력은 에도막부를 흔드는 내부의 저항세력으로 인식했다.

이런 경계심 때문인지 그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자 새롭게 영지 배분하는 과정에서 키리시탄 다이묘 93명을 삭탈관직하는 등의 숙청을 단행했다. 이는 전체 다이묘 219명의 42%에 달했다.(도설일본사, 도쿄서적) 이에야스는 그 이후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와의 일대 결전, 오사카 전투에서 히데요리 편에 가담했던 키리시탄 다이묘의 가신들을 소탕하므로써 카톨릭 세력을 궤멸시켰다.

한편 이에야스는 에도막부의 정통성을 대외에 인정받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이 가운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공으로 인해 파탄상태에 빠진 조선과 일본 간의 관계 회복작업은 시급한 외교 현안이었다.

이에야스는 “나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에 반대했다. 내 휘하 부하의 병사 한 명도 조선에 보내지 않았다”고 언급하며 조선 측에 국교재개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조선 측도 우여곡절 끝에 이에야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1609년 기유약조 체결을 계기로 양국 간의 국교는 재개되었다. 에도막부는 이밖에도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국왕사절을 초청하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며 정권의 정통성 확보에 성공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기유약조가 체결되어 양국간 국교정상화가 재개된 시점인 1609년에 ‘오타아와 운나키 오누이 상봉’이 이뤄진다.

이는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던 노정객의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한 심모원려가 아니었을까 추론을 해 본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아무도 모른다.

다음 회에서는 유럽 끝자락 이베리아 반도에서 뿌려진 씨앗들이 일본으로 날려와서 조선의 운명을 갈랐던 사건들, ‘이베리아반도 나비의 날갯짓이 조선에 폭풍우를 몰고 오다’를 소개하여 올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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