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니체는 불교를 이렇게 보았다

어릴 때부터 출가를 꿈꿨으나 이루지 못했다. 존경할만한 선지식을 찾질 못해서였다. 몇 년전부터 건강이 안 좋아진 후 이것을 기회로 삼아 불교관련 유튜브동영상을 많이 시청했다. 불교계의 스타 법륜스님, 자현스님의 동영상은 말할 것도 없고 김성철, 이중표 등 불교계 지식인들의 강의도 들었다. 그런데 이분들의 고(苦)에 대한 설명이 무언가 시원치가 않았다. 인도인들은 왜 고통에 민감했을까? 고통이라는 개념은 불교라는 거대한 구조물의 지반을 형성한다. 그 지반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즐거움조차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종국에는 고통으로 변한다는 류의 뻔한 설명들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던중 니체가 바라본 불교에 대한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책 (씨아이알 펴냄)을 접하게 되었다.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감정은 심리학에 따르면 불안이라고 한다. 변화무쌍하게 생성소멸하는 세계는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변화하는 세계를 마주한 인간은 무력감과 공허에 빠진다. 인간은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세계의 무작위성이 인간에 의해 해석되고 나면 불안은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 철학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책 에서 신화를 세계를 해석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보았다.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신화는 종교적 제도로 변화한다. 종교는 인간의 의식을 오랫동안 지배해왔다. "서양의 정신계를 규정해 온 플라톤 이후의 전통형이상학과 기독교는 인간을 이렇게 근저로부터 규정하고 있는 무력감과 공허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이런 몸부림도 곧 벽에 부닥친다. 니체는 이렇게 보았다.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던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에 유입되어 선과 악, 악에 물든 현실과 시간적으로 영원한 피안에 위치한 하늘나라로 원용되었다. 육체는 더럽고 영혼은 순결하다는 생각이 서구인의 머릿속을 지배해왔다.

서구에서 정신적 노력들은 모두 이원론에 근거했다. 이런 이원론은 현대의 마르크시즘으로 이어졌다. 다시 책의 인용이다. "니체의 철학은 서양철학을 근저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과 그에 입각한 영원불변의 순수한 실체로서의 영혼과 자유의지라는 관념, 인격신과 신의 피조물로서의 세계라는 관념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불교와 유사한 입장에 도달하게 된다." 불교 역시 세속적 복락에 대한 지양과 함께 허구적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한 가짜 평안을 동시에 지양한다는 점에 있어서 니체와 함께 비이원론적 입장을 취했다 말할 수 있다. 양자 모두 이원론적 도식에 매몰되지 않고 인생문제를 해결하려는 사유방식이었다.

니체는 불교를 기독교보다 훨씬 나은 종교로 판단한다. "불교는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문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제기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원죄와 같은 허구적인 개념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불교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선악의 저편에 있다. 불교의 경우에 선악이란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행복과 고통 그리고 자신의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에 대한 엄밀한 관찰에 의해서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박찬국 논문 에서 인용) 니체는 특히 불교가 갖고 있던 '감수성'에 주목한다.

불교는 어째서 발생했던 것인가? 불교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를 니체는 당대 인도 지식인계층을 압도적으로 규정했던 생리적 조건에서 찾는다. 그들의 특이한 생리적 조건은 "고통에 대한 지나치게 민감한 감수성"이었다. "니체는 불교가 이미 문명이 성숙할 대로로 성숙한 당시의 인도 상류사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불교는 개인들의 건강한 본능이 손상을 입고 지나치게 정신적으로 섬세한 감수성이 발달한 생리적인 조건 아래서 생성되었다고 보고 있다."(상기논문에서 인용) 심지어 니체는 수백만 마리의 동물이 가진 고통보다 히스테리컬한 여인 한사람의 고통이 더 크다고까지 말한다. 니체에 의하면 고통은 객관적 것이 아니다. 말이 좀 어렵다. 필자의 딸은 덩어리 고기를 싫어한다. 덩어리 고기는 동물의 시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필자와 딸의 고기에 대한 민감성은 생리적으로 다른 반응에 기인한다. 니체가 말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지만 당시 인도지식계층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은 유별난 것이었다는 것이 니체의 설명이다. 인도지식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도 지식인층들이 이렇게 된 것은 개념적인 작업에 과몰입함으로써 야성적이고, 생생하고, 건강한 본능을 상실하고 작은 고통에도 지나치게 두려워할 정도로 민감한 감수성을 갖게 된 것이 원인이다. 이런 생리적 조건은 우울증을 유발하는데 니체에 따르면 불교는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되는 위생학적 성격을 가진다. 불교를 발생시킨 집단은 온화한 관습을 가진 상층계급이며 이들은 관대함을 가진다. 이와 달리 기독교는 정복된 자, 억압받던 자들의 뒤틀린 적개심에 근거한 종교로 니체는 보았다.

니체는 당시 유럽의 정신적 상황과 불교가 대두하던 인도의 상황이 상당히 유사했음을 지적한다. 니체에 따르면 당시의 유럽인들은 수천년에 걸친 기독교와 소크라테스적인 주지주의의 지배 아래에서 약해질대로 약해졌고 피로해질 대로 피로해져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와 전통형이상학이 붕괴되면서 가치공백의 상황에 처했다. 당시 인도의 상층계급은 문명의 완숙과 함께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에 있었으며 전통적인 브라만교는 지배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과 유사했다. 기존의 정신적 구조물은 무너지고 새로운 것은 오지않은 상태를 니체는 '중간상태'라고 불렀다. 뒤르켐의 아노미와 유사한 개념이다.

니체는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부처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성숙하다." 정신적 피로감과 가치의 공백으로 생긴 허무감에 빠져 현대인은 야망, 패기, 정열을 상실한채 고통을 두려워하면서 적당한 안락만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들을 니체는 말세인이라 불렀다. 니체는 말세인의 삶이 불교도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에 비해 위생학적이며 건강하다고 본 불교였지만 니체는 결코 불교적 삶을 최종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다. 중간상태에서 새로운 인간형을 찾아나선 붓다였지만 니체에게 붓다는 수동적 니힐리즘의 사상가였다. 그래서 니체는 불교를 받아들이는 유럽 지식인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불교 자체가 새로운 사상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삶을 고양하는 사상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선병질적 반응에 기초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이런 태도는 삶을 '데카당'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불교에 대해 친연성을 느낀 니체였지만 이런 이유로 불교에 선을 그었다. "니체는 불교 자체가 생명력의 퇴화에서 비롯된 철학이라고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불교가 당시의 유럽에 퍼져가고 있던 말세인들의 삶에 후광을 부여하면서 그러한 삶의 확산을 크게 조장할 수 있다는 절박한 우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서구나 한국을 살펴보아도 니체의 통찰력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의 경우만 보아도 지난 20여년간 600만명이 템플스테이를 다녀갔다. 많은 이들이 '영성'에 매달렸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백만명이 움직인 특이한 문화현상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각자의 명상수행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명상산업의 소비자가 되었을 따름이다.

붓다 당대의 사회적 정신적 혼돈은 불교를 낳았다. 19세기말의 유럽적 특수성은 초인을 설파하는 니체철학을 낳았다. 21세기에는 어떤 새로운 사상 또는 종교가 발흥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전일적 세계화란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중간상태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난립하던 소국들을 통일하면서 마가다국을 비롯한 4대강국으로 재편되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붓다는 '연기법'이란 거대서사를 제시했다. 모든 것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이 주장은 타자에 대한 무한책임을 말하는 레비나스윤리학과 닮아있다. 양자 모두 가치혼란의 시대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거대서사의 마지막 시도는 '공산주의'였다.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진 후 무너진 것이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거대 서사의 현실적 가능성 그 자체였음을 사람들은 알게되었다. 대안이 보이지 않기에 모두들 떠돌고 있다.

니체의 불교연구에서 특이한 점은 불교의 발생 원인으로 당대 인도인들 마음의 생리적 요인에 주목한 것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생리적 요인은 '공허감'이라 할 수 있다. 공허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극단주의와 정체성정치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런 파편적 분절적 방식으로 탈출은 불가능하다. 모든 존재를 무한 긍정한 붓다조차 이란 거대서사를 제시함으로써 탈출할 수 있었다. 고(故) 김성철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기독교의 조직신학에 대비되는 불교의 체계불학을 제안했다. 불교를 지식인의 마음체조로부터 도그마에 기초한 종교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나름 의미있는 시도였지만 붓다 자신의 행보를 미루어 본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붓다는 가치의 혼돈 속에서 상대주의로 후퇴하기보단 연기법으로 상대주의 자체를 포괄해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혼란도 새로운 차원의, 더욱 확대된 연기법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른다. 확대된 그 연기법이 영성코뮤니즘의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필자는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토) 니체는 불교를 이렇게 보았다

▲ (박찬국 지음, 씨아이알 펴냄) ⓒ씨아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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