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간 한국 달궜던 탄광, 시대의 뒤안길로

88년간 한국 달궜던 탄광, 시대의 뒤안길로

다음 달 1일부로 88년 만에 문을 닫게 된 강원 태백시의 장성광업소. 종업식이 열린 28일 갱도 입구에서 20년 넘게 광부로 일한 3형제 광부, 막내 김영문(왼쪽)씨와 둘째 김석규(가운데)씨, 첫째 김영구씨가 얼싸안고 있다. 장성광업소는 태백 지역에서 마지막 남은 탄광이다./조인원 기자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광부가 되어/탄 캐고 동발지기 어언 수십 년/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 이 광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너희들은 자랑스런 광부의 아들이다.”

28일 오전 10시, 강원 태백 장성광업소 대강당에 모인 광부 300여 명이 ‘광부의 노래’를 합창했다. 1936년 4월 개광해 88년 동안 닫힌 적이 없던 탄광의 문을 닫는 종업식(終業式). ‘늙은 군인의 노래’(양희은) 가락에 가사를 얹은 이 노래를 부르는 광부들 표정은 숙연했다. ‘검은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대목에서 광부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대한석탄공사 창립(1950년) 이후 장성광업소에서 캐낸 석탄이 9400만t. 70여 년간 대한민국에서 나온 석탄의 절반이 이곳에서 생산됐다. 1970년대 광부는 ‘꿈의 직장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몸은 고돼도 고정적인 월급이 나왔고 ‘산업 역군’이라는 자부심도 더해졌다. 1970년대 석탄 산업 전성기엔 ‘태백에선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73년·1979년 두 차례 석유 파동을 넘긴 원동력이 이곳 탄광에서 나왔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서 석탄은 ‘국가 필수 연료’에서 ‘대기오염 주범’으로 몰락했다. 도시가스 보급으로 국내 연탄 수요도 1988년 2293만t에서 2020년 51만t으로 급감했다. 1988년 347곳이었던 탄광은 이날로 삼척 도계광업소, 경동상덕광업소 2곳밖에 남지 않게 됐다. 도계광업소는 내년 폐광한다.

88년간 한국 달궜던 탄광, 시대의 뒤안길로

광부들이 '광부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 '검은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 광부의 애환을 그려냈다. /조인원 기자

광업소 곳곳엔 ‘산업전사 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랜 기간 장성광업소와 함께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광부들은 서로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며 인사했다. 작업복에 탄가루 없이 깔끔한 얼굴이 낯선 듯 ‘막장이 눈에 선하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가족들은 광부들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정말 그동안 몸 성하게, 안전하게 잘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2대째 광부 집안인 김영문(48)씨가 고별사를 읽었다. 작업복, 안전모 차림으로 연단에 올라온 그는 막장에 들어가기 전 외치는 구호 “안전!”을 외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김씨는 “세상이 이제 우리의 쓸모가 다했다 하니, 이제 그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며 “그간 우리는 맡겨진 임무를 다했다”고 했다.

막내였던 김씨는 아버지는 물론, 두 형까지 모두 광부였다. 58세에 진폐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보며 삼 형제는 광부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장성한 이후 뿔뿔이 외지로 흩어졌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로 고향으로 돌아와 탄차(炭車)를 탔다. IMF 파동, 2003년 미국·이라크전 등 유가 폭등 시기마다, 광부들은 태백에 묻힌 석탄을 캐내 한국 경제를 살리는 주역이었다.

88년간 한국 달궜던 탄광, 시대의 뒤안길로

텅텅 빈 광부들의 사물함 모습. /조인원 기자

37년 차 광부인 이은상(60)씨는 “막장선 온갖 희로애락이 교차한다”고 했다. 채탄 작업을 하다 사망한 동료의 주검을 직접 실어서 나올 땐 절망하다가도, 동료들과 함께 살아 나와 집으로 갈 때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 간판을 보며 입광하던 시절이었다. 1950년부터 2023년까지 장성광업소에서 사망한 광부는 574명이다.

강원도가 2023년 발간한 ‘탄광 지역 폐광 대응 연구 용역’ 보고서를 보면, 장성광업소 폐광으로 태백 지역내총생산(GRDP)은 13.6% 감소, 경제 피해 규모만 3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태백시는 다른 지역에서 기피하는 교도소나 방사성폐기물 보관장 유치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이미 1987년 12만명 규모에서 3만명대로 축소된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는 역부족이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시간. 김영문씨가 “한창 힘 좋은 청년 때 만났는데, 태백 광산의 시절도 우리네 삶처럼 저무네요”라고 했다. 동료들이 답했다. “앞으론 위험한 일 하지 말고, 간신히 살아남은 목숨, 다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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