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경X현장] ‘서진이네’X‘가브리엘’, 경쟁? NO! 금요일 밤에 폭죽처럼 터질 ‘예능가 페스티벌’
tvN 예능 ‘서진이네 2’ 공동연출자 나영석PD. 사진 스포츠경향DB
1976년생 나영석PD는 바로 한 살 위 1975년생 김태호PD와 함께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예능계의 흐름을 양분해 온 연출자다. ‘여걸식스’를 시작으로 ‘1박2일’로 신드롬급의 인기를 얻은 이후 2012년 tvN으로 이적해 숱한 히트작을 양산했다.
익숙한 형식에서 조금씩 변주를 꾀하며 세계관을 확장하는 모습. 한 번 연을 맺은 출연자들과는 계속 그 의리를 이어가는 모습. 자극적이지 않은 편집과 깊은 캐릭터 분석력으로 편안한 웃음을 추구하는 모습은 나PD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런 면에서 늘 파격적인 도전을 좋아하고, 캐릭터의 극단성을 강조하며 실험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태호PD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20년을 넘게 연출생활을 한 두 사람이 한날한시에 방송을 내보낸 적은 없었다.
JTBC 예능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의 공동연출자 김태호PD. 사진 스포츠경향DB
나영석PD의 ‘1박2일’이 일요일, 김태호PD의 ‘무한도전’이 토요일이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나PD가 tvN으로 이적하고, 최근 사표를 내고 제작사 에그이즈커밍으로 옮겨오면서 김PD는 MBC에서 퇴사해 제작사 TEO를 꾸렸다. 두 사람은 같은 날 방송이 있더라도 시간대는 다르거나, 플랫폼이 아예 달라지며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일까. 두 예능 대가의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한날한시에 보는 상황이 생겼다. 이를 축복이라고 해야 할까, 애꿎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21일 첫 방송 된 김태호PD 연출의 JTBC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My Name Is 가브리엘·이하 가브리엘)’과 tvN 나영석PD의 신작 ‘서진이네 2’가 28일 한 시간에 만난다.
날짜도 같지만, 시간대까지 같다. tvN이 편성에서 조금 더 고심했다. JTBC가 ‘가브리엘’을 오후 8시50분에 편성한 데 반해 ‘서진이네 2’는 이보다 10분 빠른 오후 8시40분 방송을 내보낸다. 물론 편성은 ‘가브리엘’이 한 주 빨라 ‘가브리엘’의 지난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서사를 보려는 사람이, ‘서진이네’의 두 번째 여정을 처음을 보려는 사람들만큼 많을 수 있다.
tvN 예능 ‘서진이네 2’ 포스터. 사진 tvN
당연히 두 ‘예능 거장’의 조우는 ‘맞대결’ ‘외나무다리’ ‘호적수’ 등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한 가지가. 두 사람의 관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스타일을 주목하면서 동경하고, 응원하고 있는 사이다. 한때 ‘1박2일’과 ‘무한도전’의 협업이 추진됐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잘 알려진 비밀이다.
두 프로그램을 함께 녹화해 멤버들이 다 나오고, 토요일은 ‘무한도전’ 그리고 일요일은 ‘1박2일’로 트는 프로젝트는 결국 양쪽 방송사들의 만류로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늘 서로를 지켜보고 있으며 이번 조우에 대해서도 남다른 소회를 내놨다.
금요일 밤 시간대에 처음 들어온 김태호PD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김PD는 지난 20일 ‘가브리엘’ 제작발표회에서 “편성은 JTBC에서 결정해주셨다. 처음에는 ‘어려운 시간대를 주실까’ 생각도 했다”며 “나PD님이 워낙 좋은 상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지금 시간대”라고 말했다.
JTBC 예능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 포스터. 사진 JTBC
그는 “경쟁이라기보다는 좋은 상권과 경쟁자가 모여서 볼만한 게 많은 시간이라는 모습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경쟁이라고 표현하면 사실 주말 프로그램 만드는 PD들이 편치 않다. 좋은 콘텐츠를 골라볼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 제작자에게 좋은 것 같다”며 “좋은 시간대를 만들어주신 에그이즈커밍에 감사드리며, 잘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28일 나영석PD가 말을 받았다. 그는 “김태호PD님의 말씀을 잘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시간대에 들어와 선택지를 갖고 재밌게 보내야 한다는 말씀에 100% 공감한다”며 “예능PD가 하는 일은 즐거움을 드리는 일이다. 프로그램이 다르므로 취향에 맞춰 선택지를 가지면 된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을 즐겁게 봤다고 말한 나PD는 “경쟁이라고 생각은 안 한다. 20년 넘게 일했지 않나”면서 “서로 응원하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나영석PD(왼쪽부터), 배우 최우식, 이서진, 정유미, 고민시, 박서준, 박현용PD가 28일 오전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열린 tvN 예능 ‘서진이네 2’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tvN
한때 지상파 시청률을 갖고 다투던 사이였을지 모를 두 사람은, 어쩌면 지금 공통의 목적 앞에 서 있다. 지상파를 넘어 콘텐츠를 다루는 제작자가 된 지금,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다른 플랫폼으로부터 TV, TV 예능으로 끌어와야 할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경쟁자일 수 있지만,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는 파트너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쟁은 전례 없는 파트너십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금요일 밤 더욱 풍성해진 ‘예능의 성찬’, 그 첫술은 28일 오후 8시40분 ‘서진이네 2’를 시작으로 ‘가브리엘’로 오가며 뜰 수 있다.
하경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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