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무지개다리에 '용'이 있다?
어렸을 때 신작로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순천-녹동 간을 달리는 버스를 보며 컸다. 고흥은 어딘지 몰라도 녹동은 크면 한번 가보고 싶은 궁금한 곳이었다. 도양읍 녹동이 속한 고흥군은 1285년부터 부른 이름이며, 1441년에 흥양으로, 1914년에 다시 고흥이 된다. 흥양(興陽)과 고흥(高興) 모두 '일어날, 성할 흥' 자를 쓴다.
바다에서 흥했고, 하늘(高)에서도 흥한 고흥(高興)에서 임진왜란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바다에서 흥했다함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전라좌수영 중에서도 핵심 지역이라 내가 붙인 이름이다. 하늘에서 흥했다함은 우리의 힘을 높은 하늘로 올리는 '나로우주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음(陰)이 땅이고 양(陽)이 하늘이라면, 옛 이름 흥양도 하늘과 통한 지역이 된다.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인 전라 좌수사 관할 구역은 순천도호부(종3품), 낙안군과 보성군(종4품), 광양현과 흥양현(종6품)으로 이루어진 5관이다. 무관으로 임명하던 5포는 군진(軍陣)으로써 여수 방답진 첨사(종3품)를 제외하고, 사도진 첨사(종3품), 여도, 녹도, 발포만호(종4품)가 고흥에 있었다. 5관 5포 가운데 1관 4포가 고흥에 있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당포, 사천포, 한산도, 부산포 해전 전사상자 211명 중 62%인 131명이 고흥지역 수군이다.
흥양현인 고흥읍에는 현감이 정무를 보던 존심당과 출입문인 아문이 있다. 구한말 총리대신 김홍집이 34살 때 현감으로 이곳 존심당에서 근무했다. 바다로 통하는 개천에 두 개의 홍문(무지개다리)이 있는데, 용 형상이 있다. 옥하리 홍교는 다리 밑에 있고, 서문리 홍교는 다리 좌우에 용 머리와 용 꼬리가 있다. 길을 안내하던 후배가 용이 있다는 이야기를 내게 듣고는, 다짜고짜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사진을 찍는다. 용감한 후배 덕분에 용 사진을 건졌다.
고흥 무지개다리에 '용'이 있다?
고흥에 있는 사도, 여도, 녹도, 발포진 중에서 옛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사도와 발포이다. 여도는 여호항이 되고, 녹도는 녹동항이 됐다. 다만 녹동 앞 소록도라는 섬이 녹도 이름을 지키고 있다. 사도와 발포는 옛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사도(蛇渡)의 '도'자는 섬 '도(島)' 자가 아니고 건널 '도' 자다. 사도 마을 뒷산과 성 모습이 뱀 머리처럼 보이고, 바로 앞에는 개구리처럼 보이는 와도가 있다. 그래서 개구리를 넘보는 사도 혹은 사두(머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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