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을 얻기 위해 따귀를 맞는 사람들
동시대에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
우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할 때,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으니 그렇다. 며칠 전 특정 웹진 편집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의를 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명함을 돌리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풍경은 의도적인 것도 아니며, 부자유스러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정보를 작은 카드에 적당히 담아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어야만 조금 더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고, 이런 소통을 전제로 관계가 편해지는 것을 넘어 두터워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순기능일 테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조금은 복잡해진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러그, 브런치 등 각종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증가하다 보니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까다로워졌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각종 네트워킹 서비스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의무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된 탓이 크다. 네트워킹 서비스로 관계 맺기를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으니,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SNS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 따라붙는다. 도심 한가운데서 번쩍거리는 무수히 많은 네온사인 간판처럼 아우성 속에 빈 공허만이 남는다. 고요 속에서 전해지는 외침은 의미가 있겠지만, 모두가 외치는 곳에서 누군가의 아우성은 특별한 의미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은 그 어떤 시대에도 치열하고 각별했지만, 이 시대는 또 이렇게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명성을 얻어야만 하는 사회와 '그랑 비드'라는 탈출구
존재감을 얻기 위해 따귀를 맞는 사람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읽은 레아 뭐라비에크의 그래픽 노블
(2023, 이숲)은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시대를 만화의 형식으로 맛깔스럽게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명성을 얻지 못하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불안해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텍스트의 인물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명성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혼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2015)의 주인공들처럼, 이 그래픽 노블의 인물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만약 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니 그렇다. 도태된다는 것은 특정한 조직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니 악착같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세계관이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만화 속 인물들은 함부로 거역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풍경은 지금 이곳의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도 하다.
자신을 증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계관을 품고 있는 이 만화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그랑 비드(이 책의 제목 그랑 비드(Le Grand Vide)는 영어로 Big Empty, 즉 '대공허'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역의 고유 명사여서 그대로 그랑 비드라고 표기했습니다 -편집자말)'를 찾아가는 것이다. 익명의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아우성치는 곳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