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 야구 하지마” 그게 저였죠…바람의 아들 ‘머쓱한 신바람’

“정후, 야구 하지마” 그게 저였죠…바람의 아들 ‘머쓱한 신바람’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텍사스 레인저스 캠프에서 지도자 연수 중인 이종범 코치. 올 시즌 아들 이정후와 사위 고우석이 동시에 MLB에서 뛰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배영은 기자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텍사스 레인저스 캠프에서 지도자 연수 중인 이종범 코치. 올 시즌 아들 이정후와 사위 고우석이 동시에 MLB에서 뛰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배영은 기자

“차범근 선배님도 차두리가 처음 축구한다고 했을 때는 반대하셨을 걸요.”

 

메이저리그(MLB)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객원 코치로 일하고 있는 이종범(53)은 어린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마터면 아버지의 반대로 야구를 못 할 뻔했던 아들의 이름은 이정후(25). 지난해 12월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 달러(약 1505억원)에 계약한 한국 최고의 타자다. ‘바람의 아들’로 불렸던 아버지 때문에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어느덧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새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정후, 야구 하지마” 그게 저였죠…바람의 아들 ‘머쓱한 신바람’

이정후

이정후

이제 ‘이정후 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이종범 코치를 지난 2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만났다. 텍사스 구단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코치 연수를 받는 이 코치는 “야구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않나. 요즘은 야구선수로 성공하는 게 더 어려워졌고, 심지어 정후는 유명한 아버지 탓에 압박감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이렇게 잘 된 걸 보니 내가 선견지명이 정말 없었나 보다”라며 웃었다.

 

아들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이 코치는 “정후는 두 살 때부터 야구 배트를 장난감으로 삼았다. 어렸을 때 탁자 밑으로 슬라이딩을 하며 놀던 기억도 난다”고 했다.

 

이 코치는 아들 이정후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캠프지가 있는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머물고 있다. 텍사스 캠프가 있는 서프라이즈로 왕복 2시간 거리를 오가는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저녁때는 아들과 함께 지낸다. 오전 6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지만, 마음은 무척 편하다고 했다. 이 코치는 일부러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다른 구단을 택했다고 털어놨다. 이 코치는 “아들 정후가 뛰는 팀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면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보라스 코퍼레이션에 ‘샌프란시스코만 빼면 어느 팀이든 좋다’고 이력서를 건넸다. 다행히 텍사스에서 기회를 얻어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이 코치는 이미 ‘샌프란시스코 선수 이정후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정후, 야구 하지마” 그게 저였죠…바람의 아들 ‘머쓱한 신바람’

고우석

고우석

이 코치에게는 이정후 외에도 올해 빅리그 데뷔를 앞둔 가족이 한 명 더 있다. 사위 고우석(25·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다. 이정후의 동생 가현씨와 결혼한 고우석은 지난해 11월 아들을 얻었다. 아직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됐는데 이 코치는 “벌써 외손자가 야구를 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좋은 DNA가 많이 보인다”며 자랑했다. 이왕 ‘바람의 가문’이 사위까지 확장된 이상, 손자까지 3대째 ‘야구 명문가’를 이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아들과 사위가 동시에 MLB에서 뛰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다. 이 코치 부부는 처음으로 그 순간을 누릴 기회를 잡았다. 샌프란시스코는 다음 달 29일 샌디에이고의 홈구장 펫코파크에서 정규시즌 개막전을 치른다. 불펜 투수인 고우석의 등판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정후는 이변이 없는 한 타석에 설 것으로 보인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일찌감치 “개막전 1번 타자는 이정후”라고 예고했다. 이 코치 부부는 관중석에 앉아서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볼 생각이다.

 

이 코치는 “정후가 MLB에서 첫 안타를 치는 장면을 직접 보면 정말 가슴이 벅찰 것 같다. 심지어 사위 우석이까지 그날 등판할 수도 있지 않나”라며 “시범경기 때도 볼 수는 있겠지만, 정규시즌 경기는 느낌 자체가 다를 거다. 벌써 기대가 된다”고 했다.

 

이 코치는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첫선을 보이는 홈 개막전도 손꼽아 기다린다. 4월 6일이 ‘디데이’인데 이날 맞붙을 상대가 또 샌디에이고다. 이 코치는 “정후의 입단식 날 오라클파크를 둘러봤는데 정말 멋진 야구장이었다”며 “그날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이다. ‘바람의 아들(Son of Wind)’ 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갈까 생각 중”이라며 빙긋이 웃었다.

서프라이즈(미국 애리조나주)=배영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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