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빨리 늙는 MZ 세대, ‘칼퇴’와 ‘워라밸’로 노화 막는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한빛라이프 제공
“MZ세대가 왜 칼퇴와 워라밸을 따지겠습니까. 그게 노화를 늦추기 때문이죠.”
국내 처음으로 ‘가속 노화’를 경고한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MZ식 가치관’을 노화를 늦추는 방법으로 꼽았다. 가속 노화는 실제 나이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더 드는 현상을 말한다. 가속 노화가 심해지면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훨씬 빨리 늙게 된다. 가속 노화는 돌봄비용 증가 등 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막기 위해 정 교수는 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속 노화를 막으려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신간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을 출간해 감속 노화 실천법을 상세히 소개했다.
3040대 남성 절반 이상 ‘비만’
정 교수는 MZ세대의 가속 노화가 치명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노년층은 젊었을 땐 가속 노화 요인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지금은 현대 의료시스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건강했던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반면 MZ세대는 사정이 다르다. 2020년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남성의 58.2%, 40대 남성의 50.7%가 비만으로 조사됐다. 40대 남성의 고혈압 유병률(31.5%)은 1998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았다. 정 교수는 “젊은 당뇨, 고혈압, 암, 비만이 늘었다는 건 젊은 몸의 고장 정도가 더 빈번해졌다는 것”이라며 “가속 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 중인 세대”라고 우려했다.
성인 시기의 대사 과잉과 노쇠와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성인 시기의 대사 과잉이 심하면(왼쪽) 질병과 노쇠가 일찍 찾아오고 노쇠 기간도 길어진다. 반면 성인 시기의 대사 과잉을 최소화할 경우 노쇠가 찾아오는 시간을 늦춰 생물학적인 노화가 덜 진행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한빛라이프 제공
MZ세대가 유독 가속 노화가 심한 이유는 뭘까. 정 교수는 MZ세대의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을 이유로 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극적인 영상을 접하고, 쾌락을 좇는 습관과 외식이 보편화하면서 당류 섭취도 크게 늘었다. 스트레스와 수면·운동 부족 등과도 연관성이 깊다. 정 교수는 “도파민(쾌락과 고통을 주관하는 신경물질) 중독은 반드시 반대로 스트레스를 야기한다”며 “만성 스트레스는 전두엽 기능을 저해하는 등 신체 여러 곳에 노화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자기학대식 기성 문화 거부해야
게티이미지뱅크
정 교수는 MZ세대의 가속 노화의 결정적 원인이 기성 문화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빈곤·도태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가 있는 기성세대가 자기학대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당연시해 온 탓에 사회 전반의 스트레스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화 시계가 천천히 흐르게 하려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잘 돌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업무에 오랜 시간을 할애할 것을 강요하는 기성 문화에선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칼퇴와 워라밸을 강조하는 ‘MZ식 가치관’이 노화를 막기 위한 본능에 가깝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최근 미국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오후 9시면 취침하는 습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 교수는 “자기파괴적 음주 문화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을 확보하려 하는 건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앞으로 이 같은 자기돌봄 경향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노인 스스로 돌봐야 장수 재앙 아닌 축복”
게티이미지뱅크
MZ세대의 가속 노화는 사회의 위험 요소다. 정 교수는 “20년 뒤를 가정해보면 지금 70대인 노년층도 여전히 살아있고,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와 MZ세대 모두 노쇠해져 돌봄 수요가 커진다”며 “저출생으로 생산인구는 줄었는데, 세 세대가 동시에 의료돌봄과 간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대책도 시급하다. 그는 “우리나라는 만성 질환에 대한 개별 전문 진료과들의 대응은 잘돼있지만, 가속 노화에 대한 국가적 대응은 복지부동한 수준”이라며 “싱가포르가 흡연 가능 연령대를 높이거나 설탕세를 매기는 등 적극적인 정책 시행으로 국민 건강 관리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가속 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커지고 있다. 정 교수는 “젊은 세대가 자기 몸을 챙기는 게 유난스럽게 여겨지지 않아야 한다”며 “미래의 노인들이 스스로 신체 기능을 보존해야 장수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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