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여자부 페퍼저축은행(이하 페퍼)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오지영(36)과 이민서(21)가 ‘선후배 간 괴롭힘’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서 외에 또 다른 후배인 A씨도 있지만, A씨는 아직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결국 오지영과 이민서가 상충된 의견으로 갈등의 중심에 섰다. 오지영은 “정당한 훈계는 했지만, 폭언과 폭력 행사 등 괴롭힘은 없었다”는 입장이고, 이민서는 “인격 모독적 발언 등 공개망신을 여러 차례 주며 괴롭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로배구 여자부 페퍼저축은행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오지영(오른쪽)과 이민서. /한국배구연맹
오지영은 지난달 27일 한국배구연맹(KOVO) 상벌위원회로부터 ‘후배 괴롭힘 혐의’로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다. KOVO에서 구단 내 선후배 간 괴롭힘 혐의로 징계를 내린 건 처음이다. 오지영에게 내린 1년 자격 정지 처분의 처벌 근거 중 하나인 선수인권보호위원회 규정이 명시한 징계 중 최고 수위다.
이후 페퍼는 즉시 오지영과 계약해지를 했다. 페퍼는 오지영과 2022-2023시즌이 끝나고 3년 10억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는데, 이번 징계에 따른 오지영의 귀책사유로 잔여 연봉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민서는 이미 지난해 11월 페퍼를 떠나 현재는 프로가 아닌 실업팀에서 뛰고 있다. 오지영은 3년 전 도쿄 올림픽(4강 진출)에서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리그 최정상·고참급 리베로고, 이민서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페퍼)로 뽑힌 신인급 선수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상황은 이렇다. 둘은 2022년 12월 페퍼에서 만났다. 오지영은 2022-2023시즌 도중 GS칼텍스에서 페퍼로 팀을 옮겼다. 이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맛집·쇼핑·여행 등에 관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재미있는 동영상도 공유했다. 오지영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대화는 지난해 10월까진 이어진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관계가 틀어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민서는 지난달 29일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지난해 6월말부터 팀에서 나가는 날(11월)까지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 괴롭힘은 9월·10월에 제일 심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괴롭힘 사례는 모욕적인 발언으로 팀원들 앞에서 공개적 망신을 준 것과 각종 잔심부름을 시킨 것 등이 포함됐다. 괴롭힘의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오지영과 이 기간에 다정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비위를 맞추고자) 일부러 과하게 답장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오지영 측은 “괴롭힌 사실이 없으며 둘이 갈등을 겪은 것은 교통사고 사건 때부터였다”고 맞서고 있다. 이 ‘교통사고’는 지난해 10월 21일 일어났다. 당시 오지영을 비롯한 주전(선발) 선수들은 인천 원정 경기(22일)를 치르기 위해 페퍼 숙소 등 체육관이 있는 광주광역시를 떠났다. 프로배구 팀들은 원정 경기가 있을 시 일반적으로 하루 전에 그곳으로 가 훈련한다. 그런데 이때 이민서를 포함한 후보 선수들이 광주광역시에서 교통사고에 휘말렸다. 애초에 주전 선수들과 후보 선수들이 분리된 채 움직인 건 팀 방침 때문이었다. 한 현직 배구팀 감독은 “실력에 따라 선수들을 운용하고 다른 공간에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페퍼나 (당시 조 트린지) 감독이 유별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022-2023시즌 당시 페퍼저축은행의 이민서(왼쪽부터), 서채원, 문슬기, 오지영. /한국배구연맹
교통사고 사건이 터진 이후 오지영은 이민서 등에게 앞으로 주의하라는 차원에서 훈계했다. 이후 둘은 몇 차례 더 메시지를 주고받고, 대면해서 대화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이민서가 11월 13일자로 팀을 나갔는데, 당시엔 “배구를 그만두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랑 내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페퍼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페퍼 관계자는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증인을 거쳐 (괴롭힘) 사례에 대한 확인을 했다”며 “괴롭힘의 강도에 상관없이 유무만 따졌을 때 분명히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페퍼는 지난달 15일 관련 내용을 KOVO 선수고충처리센터에 신고했고, 이는 상벌위원회에 회부돼 지난달 23일과 27일 두 차례 회의를 거쳐 오지영의 징계가 확정됐다. 오지영과 이민서는 두 회의에 모두 참석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졸속 절차’ 논란도 불거졌다. 오지영은 1차 상벌위원회(23일)에 출석하기 전까진 본인이 어떤 이유로 조사를 받는지에 대해 몰랐다고 한다. 이에 대해 KOVO 관계자는 “출석하기 전에 이유를 알려주면 (피해자 협박 등) 또 다른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출석 당일에 설명을 했다”고 해명했다. 1차 회의 이후 비로소 본인의 ‘혐의’를 알게 된 오지영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2차 회의(27일)까지 급하게 소명 자료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고, 적합한 ‘반론권’을 얻지 못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오지영을 대리하는 정민회 변호사는 “오지영의 행위가 사회·법률적으로 지탄받아야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선임·선배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며 “향후 상벌위원회에 재심 청구도 하고, 아예 징계 무효 소송도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배구 흥행에 찬물이 끼얹어져 당황스럽다”며 “단체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만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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