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구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전직 대법원장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지고, 전·현직 법관 100여명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사건은 지난 2017년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이탄희 판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사직서를 제출하며 불거졌다.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를 지시했다며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다. 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했지만 ‘부실 조사’라는 반발이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2017년 9월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 취임 후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대법원의 2차·3차 조사가 이어졌고 김 대법원장은 2018년 6월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취지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했고, 3차장검사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수사팀장을 맡았다. 한 위원장은 2019년 2월 양 전 대법원장 구속 기소를 직접 발표했다. 사법부 수장이 구속 기소 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법원 내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대법원 문을 열어 젖히고 수사에 협조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으나 대표적 ‘재판 지연’ 사례로도 지목됐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9월 1심 마지막 공판까지 4년 7개월간 재판이 290차례나 열렸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심 구속기한(최장 6개월)을 앞두고 석방됐고, 폐암 수술을 받았다. 재판부 교체로 법정에서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7개월 가까이 재생하기도 했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무죄 확정)는 2021년 2월 국회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탄핵이 소추됐지만 그해 10월 헌법재판소 각하 결정을 받았다. 김 전 대법원장이 2020년 5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표를 낸 임 전 부장판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내가 사표를 받으면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 거짓 해명을 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형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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