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치러진 22대 한국 총선에서 역대 최다로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선출됐다. 지역구 선출은 직접 국민의 투표로 선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1일 지역구 개표 결과에 따르면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24명, 국민의힘 12명 등 36명이 당선됐다. 이전 최다였던 2020년 21대 총선 29명을 깨는 기록이다.
역대 총선 중 최다 기록이지만 전체 비율로 따지면 14% 정도다. 비례대표를 모두 합쳐도 전체 의원 중 여성은 60명으로 20%에 그친다. 특히 여성계에서 기대감과 동시에 국회 ‘유리천장’은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름 올린 여성 당선인은?
한강 벨트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서울 동작을에서는 국민의힘 나경원 당선자가 민주당 류삼영 후보를 이기고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 가운데 여성은 더불어민주당 41명, 국민의힘 30명, 녹색정의당 7명, 개혁신당 6명, 진보당 5명, 새로운미래 3명, 자유통일당 2명 등 총 97명이었다.
여성 지역구 당선자는 주로 수도권에 집중됐는데, 서울은 11명, 경기에서는 14명이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한강 벨트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서울 동작을에서는 국민의힘 나경원 당선자가 민주당 류삼영 후보를 이기고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22대 국회 입성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 가운데는 최다 선출이다.
광진을에서는 고민정 후보가 국민의힘 오신환 후보와의 접전 끝에 당선됐다.
출구 조사에서 패배할 것으로 나타났던 경기 성남분당을의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는 김병욱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경기에서는 민주당 이재정 후보가 안양동안을에서 국민의힘 심재철 후보를 이기며 3선 중진이 됐다.
포항북에서는 김정재 국민의힘 후보가 3선에 성공했고 경산에서는 무소속 최경환 후보와 맞붙은 정치 신인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가 당선돼 이변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미애 경기 하남갑 당선인은 6선에 성공해 사상 첫 여성 국회의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은 통상 제1당의 최다선, 최고령 의원이 맡는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김상희(4선) 민주당 의원이 첫 여성 국회 부의장이 돼 주목받았다.
특히 대전에서는 지역 최초로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해 지역 여성단체는가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정현(대덕구) 후보와 황정아(유성구을) 후보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에 대해 대전여성단체연합은 11일 논평을 내고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전지역 최초의 두 여성 당선인의 국회 진출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여성에게 불리한 기존의 정치 문화 속에서 여성 당선인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 후보자들에 대한 주권자들의 지지와 더불어 후보자들의 경쟁력이 높았음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연합은 그러면서도 “공직선거법에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조항이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699명의 공천 후보 중 96명만이 여성 후보자였다”며 “여전히 우리 정치 구조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만큼 국회 내 최소한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의 정치 대표성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유리천장’ 존재하는 국회 입성
지역구 당선자 수는 늘었지만 전체로 따지면 여전히 인구구성 대비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낮은 수준이다.
한국 국민 절반 이상은 여성으로 50.18%이지만, 당선된 지역구 여성 의원의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역대 여성 지역구 의원의 입지는 좁았다.
제헌 국회부터 임영신(1, 2대), 박순천(2,4,5,6,7대), 박현숙(3,6대), 김옥선(7, 9대), 김윤덕(9, 10대) 의원 등의 여성 의원들이 있었지만 14대까지 지역구 당선자는 아예 없었던 국회가 대부분이었다.
15대 국회엔 여성 지역구 의원이 2명이었고, 16대 총선 때는 여성 후보자 33명 중 5명만이 국회배지를 달았다.
17대 때는 65명 중 10명, 18대는 132명 중 14명, 19대 때는 63명 중 19명, 20대 때는 98명 중 26명, 21대는 209명 중 29명이 당선됐다.
비례의원까지 합한다해도 그 비율은 여전히 낮다. 22대 국회 전체 여성의원은 60명으로 20%에 해당한다.
21대 국회는 전체 의원 300명 중 여성이 57명으로 19%였다. 이번에 소폭 상승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3.9%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여성 지역구 당선자를 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당헌당규에 명시된 여성 30% 공천 조항을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선관위 여성 후보자 통계를 보면 전체 더불어민주당은 254명 중 41명(16.14%)을, 국민의힘은 30명(11.81%)을 공천했다.
이와 관련해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은 BBC 코리아에 “(여성 국회의원이) 근소한 차이로 증가는 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거대 정당들이 그동안 여성 당선 가능성이 떨어진다 혹은 인력 풀이 적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30% 권고조항을 지키지 않았던 배경이 있는데, 여성들이 나가서도 충분히 지역구에서 당선할 수 있는 당선 경제적 가능성을 이제 보였기 때문에, 이제 이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황 사무국장은 여성 의원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가 법안으로도 현실화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앞서 지난 2021년 국회에서 성평등 국회를 위한 결의안이 발표됐지만 통과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후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국회의장에게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의회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시 공천할당제를 비례대표 의석 뿐 아니라 지역구 의석에도 의무화하되 특별 성별이 전체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그는 “성평등 결의안도 그렇고 인권위에서도 국회와 정당에 이제 여성 후보 공천 비율을 높이라고 권고했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여성 대표성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들이 경제 활동이나 아니면 보건 의료나 교육에서 남성들과의 큰 격차가 없음에도 정치적 대표성이 있어서 이렇게 큰 격차를 나타내고 있는지 이제 짚어봐야 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세계경제포럼(WEF)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3)’에 따르면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0.680으로, 전 세계 146개국 가운데 105위를 기록했다.
특히 정치권력 분배 부문 가운데 ‘의회에서의 여성 비율’은 전 세계 84위였다.
당시 WEF는 “피지와 미얀마, 한국 등은 정치 권력 분배 부문에서 가장 퇴보한 국가들”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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