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참배 후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뒤에 모인 지지자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총선 결과를 좌우할 중요한 인물이라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깔끔한 슈트핏과 지적 이미지, 야당 의원들을 향한 ‘사이다’ 발언으로 보수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위기의 여당을 구하기 위한 대타로 타석에 섰다. 여론의 관심은 뜨겁다.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까지 화제가 된다. 연설문에 등장하는 윈스턴 처칠, 에이브러햄 링컨, 서태지 오마주는 뉴스를 타고, 연설에 앞서 넥타이를 풀어도, 지지자에게 인사하려고 의자를 밟고 올라서도, 퇴근할 때 뚱뚱한 바나나우유 하나를 들고 있어도 주목받는다.
1973년생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구할 수 있을까. 30% 고정 지지층에게만 소구하는 국민의힘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까. 초반 2주를 보면 쉽지 않을 듯하다. 여당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경향신문 새해 여론조사를 보면 4월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54%로 정부 국정운영을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 36%보다 많았다. 모든 조사에서 정부 견제론이 60% 안팎으로 지원론보다 크게 우세하게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와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여당 심판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당당하기만 하다. 신년사에서까지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 타파”를 외치며 야당 공격에 몰두하고 국정 실패 비판은 외면한다. 여당 대표를 부하 취급하며 독단적 국정운영을 해온 데 대한 반성도 없다.
보수의 아이돌 한 위원장의 초기 행보도 윤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 결정타는 김건희 특검법 대응이다. “죄를 지었으니까 특검을 거부한 겁니다”라는 어록을 남긴, 살아 있는 권력에 저항하던 검사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후에는 특검의 칼날이 자신과 배우자를 향하자 곧바로 거부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해야 한다”며 야당 대표의 특권을 비판하던 한 위원장도 멀쩡하게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이 “악법”이라며 권력자 옹호에 앞장섰다. 거부권 반대 여론은 차갑게 외면당했다. 남의 잘못에는 추상같고 자신의 허물에는 한없이 너그럽다. 여당은 혼연일체 윤석열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알려진 한 위원장의 수락 연설은 제1야당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가까웠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운동권 특권정치, 개딸 전체주의라고 공격하는 데 연설 대부분을 할애했다.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것을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라고도 했다. 이 문장에서 다수당을 여당으로만 바꾸면 김건희 특검을 대하는 국민의힘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어쨌든 앞뒤 돌아보지 않는 야당 공격과 조롱은 윤 대통령과 똑같다. 자신을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집중한 ‘박근혜 비대위’가 아니라 상대방 공격에서 존재의 정당성을 찾은 ‘황교안 비대위’를 닮았다.
X세대 한 위원장은 보수의 변화와 쇄신을 주도하는 차세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보수 일각에선 기존의 ‘올드 라이트’나 실패한 ‘뉴 라이트’와 달리 한 위원장은 ‘넥스트 라이트’ 지도자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 위원장은 민주당 586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하겠다며 비대위를 반운동권 789세대를 중심으로 꾸렸다. 586 민주화 세대가 정치 전면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은 시간의 순리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태정치의 원인이 돼온 올드 라이트의 청산이다. 한 위원장이 586 청산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X세대라는 생물학적 젊음 외에 보수의 혁신을 위한 비전과 실행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아바타’란 평가도 탈피하지 못하는 그가 유권자에게 제시한 시대정신은 뭐가 있는가.
강남8학군 출신,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 최연소 검사장, 40대 법무부 장관 경력과 세련된 이미지는 그의 장점이다. 그 스펙과 이미지 이면에는 비대한 자의식과 오만한 능력주의가 읽힌다. 그의 연설을 보면 웅변대회에 나온 깔끔하게 차려입은 부잣집 도련님 같다. 좋은 말이 많고 유명한 사람도 등장하는 멋있는 연설인데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발이 현실에 닿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말투에서는 지는 건 참을 수 없고, 불편한 소리는 듣기 싫은 티가 난다. 질문받는 정치인이 아니라 여전히 질문권을 독점하는 검사다. 김건희 특검 거부권에 반대 여론이 60~70%라고 묻자 “내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버린다. 그가 말하는 동료시민에는 누구까지 포함되는지 궁금하다.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에 언론의 자유는 포함되는지 궁금하다.
지금 같아서는 한 위원장은 ‘X세대 윤석열’, ‘슈트핏 좋은 윤석열’, ‘책 좋아하는 윤석열’, ‘술 안 마시는 윤석열’, ‘강남 출신 윤석열’일 뿐이다. 그래서는 넥스트 라이트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박영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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