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게임만 잘해선 안 돼요" 외국어·인성도 갖춰야 하는 프로게이머

이다솔군과 김승현군이 18일 서울 관악구 게임 아카데미에서 자세를 교정받고 있다. 전유진 기자

“자, 팔을 이렇게 벌리고 손을 기준으로 움직여야지.”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학원에선 ‘마우스 사용법’ 교육이 한창이었다. 마우스야 자기가 쓰기 편한 대로 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이 학원의 정체를 알게 되면 이 교육이 필수적이란 걸 알 수 있다.

이곳은 바로 프로게이머를 양성하는 게임 아카데미다. 100분의 1초 반응속도를 다투는 게임 현장에선, 장비를 어떤 자세로 어떻게 쓰느냐부터가 교육의 시작이다. 강사가 마우스 잡는 법을 가르치고, 학생은 설명을 놓칠세라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마우스 잡는 자세’에 대한 설명만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매일 오후 6시엔 학교를 마친 중·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 이곳에선, 프로게이머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열정이 뜨겁다. 하루 15시간씩 연습한다는 김승현(16)군은 “저는 꼭 이 길로 갈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e스포츠 산업의 성장세에 따라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늘면서, 이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원들도 급증하고 있다. 아이돌을 꿈꾸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기획사를 찾는 것처럼,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프로게이머 데뷔를 꿈꾸며 게임 아카데미를 찾는 거다.

외국어·인성 교육까지

게임단 예산, 스트리밍 수익, 대회 상금을 합산한 e스포츠 산업 규모. 그래픽=송정근 기자

e스포츠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다시 성장 동력을 얻었다. 2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게임단 예산, 스트리밍 수익, 대회 상금 합산)는 2015년 722억 원에서 2020년 1,204억 원, 2022년 1,514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종목에서 한국 대표팀이 첫 우승을 차지한 뒤부터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급증했다. 프로게이머 양성을 목표로 하는 게임 아카데미들은 서울에만 40여 곳이 있는데, 지방 거주 학생들은 온라인 수강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망생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이승우 게임PT 아카데미 매니저는 “수강생 중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도 있다”며 “최근 학원을 찾는 초등학생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열풍 때와 달라진 점은, 예전처럼 게임만 잘하는 걸로는 프로 무대에 서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최근엔 게임 쪽도 국제대회가 많이 열리고 해외팬들이 급증하면서 외국어 실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프로게이머 데뷔를 준비하는 중학생 엄종환(13)군은 올해 초부터 부모님을 설득해 영어학원을 다닌다. 그는 “1인칭 슈팅게임인 ‘발로란트’에서 프로팀 입성을 꿈꾸고 있다”며 “해외팀에 소속되거나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영어가 필수적이라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미국에서 팀을 지도했던 정영수 코치도 “비슷한 실력이면 의사소통이 되는 선수가 우선”이라며 “일본어나 중국어를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체력과 인성도 중요한 요소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중학생 이다솔(15)군은 하교 후 게임에 몰두하다가도 일주일에 네 번은 운동을 위해 피트니스장을 찾는다고 했다. 이군은 “하루 종일 연습을 하거나 게임 영상을 분석한다”며 “아무래도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까 허리 근육을 키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합숙 훈련을 하며 단체 생활하는 법을 익히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10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합숙 훈련을 한 적 있다는 신정운(18)군은 “한집에서 다 같이 먹고 자고 게임하면서 합을 맞추고 협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규모가 큰 e스포츠 구단들은 합숙 테스트를 통해 지원자의 실력, 인성, 단체 생활 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성공 확률 0.1%의 고된 싸움

“이제 게임만 잘해선 안 돼요” 외국어·인성도 갖춰야 하는 프로게이머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단이 13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 돔에서 열린 2024 LCK 스프링 결승 진출전 경기 시작 전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렇게 수년간 치열한 훈련을 한다 해도 실제 프로가 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프로팀 입단 자체도 쉽지 않지만, 순발력을 요하는 게임 특성상 데뷔를 해도 20대 초반이면 선수 수명이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 선수로 활동하다가 후배 양성에 뛰어든 최성민 코치는 “프로게이머로 성공할 확률은 0.1%에 불과하다”며 “성공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준비생들이 늘고 시작 연령대도 낮아지는 만큼, 프로게이머 지망생의 ‘제2의 인생’을 품을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초·중등 학생들이 ‘플랜 B’ 없이 무작정 프로게이머 준비에 뛰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학부모와 아이들이 섬세하게 소통하고, 학교 교육에도 흥미와 열정을 놓지 않도록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성민 코치도 “아이들의 역량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 (대성할) 가능성이 적다면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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