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결국 구제된다' 인식이 이 상황 불렀다" 노교수의 일침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대란’이 가시화한 가운데 지난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내 전공의들의 업무 공간인 의국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대란’이 가시화한 가운데 지난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내 전공의들의 업무 공간인 의국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환자 생명은 절대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서는 어떤 이유로도 국민 동의를 얻기 힘듭니다.” 의대 정원확대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들에 대해 정영인(68)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는 “다른 방식으로 투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약분업 때 ‘효험’ 본 집단행동, 폐습 됐다”  

  정 교수는 부산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2022년 2월까지 재직하며 의대생을 지도했다. 국립부곡병원장 등을 지내 병원을 운영한 경험도 있다. 정 교수도 평생 의사로 살아왔지만, 그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의사가 많다고 본다. 특히 집단행동 등을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 사회의 기조에는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 교수는 “의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 때 집단행동을 통해 ‘의사 집단의 힘’을 자각했다. 이후 강성으로 치우진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확대 등 주요 국면마다 집단행동으로 기득권을 지켰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의 이런 시도는 대부분 성공했다”고 짚었다.

 

정영인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정영인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정 교수가 몸담았던 부산대병원 전공의 244명도 대부분 사직서를 냈고, 지난 20일부터 출근하지 않고 있다. 부산대 의대생 590명 중에선 582명이 휴학계를 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2020년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의대생들이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그러자 ‘의사 선배’인 대학병원장들이 나서 대리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며 “이를 통해 구제된 경험이 후배 의사와 대학생 등에게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대체 인력이 없고, 결국 구제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직업윤리가 실종되는 상황까지 부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엔 묵시적으로 동조한 교수 등 선배 의사들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본다. 이어 “이익 집단으로서의 의사 사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의 투쟁 방식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거친 증원’ 능사 아냐. 논리ㆍ보상책도 필요”

  정 교수는 “의사가 부족하단 사실은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다. 한국 인구가 줄어드는 건 맞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가 되면 의료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며 “의사를 늘리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 증원을 추진하는 정부의 방식은 거칠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 의대생 정원의 3분의 2에 달하는 숫자를 일시에 늘리겠다고 덜컥 발표했다. 장기간 논의를 거친 결과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반박하지 못할 만한 정교한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며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구속 수사를 하겠다는 등 감성적인 접근으로는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지난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전원하는 입원환자를 태우기 위해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지난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전원하는 입원환자를 태우기 위해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정 교수도 ‘단순 증원’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데는 동의했다. 그는 “의대생이 늘어나면 필수 의료가 확보될 거라는 건 착각이다. 기피하는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확고한 보상책이 뒤따라야 한다. 힘들고 중요한 일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건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대 증원 이외에도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 의사 간의 역할을 분담하고, 의사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독점 구조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 교수는 “(대학병원 등이) 전공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지금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의대 증원과 함께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해야 균형 있고 합리적인 전문의료 양성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ㆍ안대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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