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 취·창업허브센터에서 열린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A씨는 팀장의 계속된 폭언과 업무 전가에 시달리다 이직을 결심했다. 그렇게 다른 회사의 면접을 무사히 치르고 왔지만 희망은 잠시, 끔찍한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 A씨의 이직 준비를 알게 된 팀장이 “업계 평판을 박살 내버리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회사가 만든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퇴직한 뒤에도 취업 방해를 겪고 있다는 피해 사례 여러 건을 18일 공개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할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많은 노동자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블랙리스트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단체는 전했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라면 더 힘들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받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외의 대응을 하기 어려운 탓이다.
일부 악덕 회사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 근로자의 퇴사를 방해·종용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한다고 한다. 한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이었던 B씨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소장의 갑질에 항의해 동료 직원들 의견을 모아 건의사항을 제출했다가 퇴사했다. 이후 일자리를 구하려 했으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어 입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좌절해야 했다.
또 다른 제보자 C씨는 고용주로부터 “이 업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소문을 내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다는 이유에서다. 그 뒤 이직에 성공했으나, 그 고용주는 새 회사 대표에게 전화까지 해 “C씨를 조심해야 한다”는 뒷담화를 했다. C씨는 “무섭고 두려워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앞서 쿠팡이 물류센터 노동자 1만6540명을 대상으로 ‘취업제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직장 내 관련 사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된 쿠팡의 블랙리스트 문건에는 노동자의 이름·근무지·생년월일·퇴사사유·노조직함 등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는 “블랙리스트 작성과 운영은 결코 회사의 고유권한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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