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 76세로 사망
1990년대 중반 2명이 사망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전직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이 지난 11일(현지시간) 76세로 사망했다.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오렌탈 제임스 심슨(O.J. 심슨)은 대학 리그에서 먼저 명성을 쌓은 뒤 내셔널 풋볼 리그(NFL)에서 활약했으며, 이후 배우로 전향했다.
그러던 1995년, 심슨은 전처인 니콜 브라운과 브라운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는다. 해당 재판은 미 전역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2008년엔 무장 강도 혐의로 기소돼 징역 33년 형을 선고받고, 2017년 석방됐다.
심슨 측 유가족은 11일 성명을 통해 심슨이 “자녀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한편 사건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처 브라운과 그의 친구 론 골드먼이 로스앤젤레스 소재 브라운의 자택 밖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심슨은 이내 용의자로 몰려 체포된다.
그런데 출석하기로 한 날, 심슨은 전 동료와 함께 흰색 포드 브롱코 차량을 타고 도주에 나섰고, 경찰차가 출동해 로스앤젤레스 곳곳을 느리게 달리며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당시 아직은 초기 단계였던 24시간 뉴스 채널에서 해당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면서 미국은 물론 해외 시청자들 또한 이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체포된 이후 진행된, 미 현지 언론이 ‘세기의 재판’이라 이름 붙인 자리에서 검사는 심슨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전처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심슨을 두 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고자 혈액, 모발, 섬유 검사 결과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그러나 심슨 측 변호인단은 경찰이 인종차별적 동기로 인해 심슨을 모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재판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검찰이 심슨에게 피 묻은 장갑을 끼워보라고 요청했을 때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알려진 해당 장갑은 심슨의 손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에 심슨 변호인단의 조니 코크란은 최후 변론에서 배심원들을 향해 “만약 맞지 않는다면, 무죄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재판 중 용의자 심슨은 살인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 장갑을 착용해봤다
결국 배심원단은 “100% 무조건 무죄”라는 심슨의 손을 들어줬고, 무죄 판결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우선 브라운과 골드먼의 유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1997년 심슨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배심원단은 심슨에겐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봤고, 심슨은 유가족에게 3350만달러(약 450억원)를 배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006년, 심슨은 ‘만약 내가 했다면’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팔았으며, TV 인터뷰에도 출연해 그동안 강력히 부인했던, 만약 자신이 살인했다면 어땠을지에 대한 “가설”을 내놓고자 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대로 책 출판 및 TV 인터뷰 모두 중단됐으며, 이후 골드먼의 가족은 해당 책의 판권을 획득해 심슨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추가해 발행했다.
한편 2008년, 심슨의 명예는 다시 한번 추락하게 된다. 공범 4명과 함께 라스베이거스 소재 한 호텔 방에 침입해 스포츠 기념품 딜러 2명을 총으로 위협한 뒤, 자신의 NFL 시절과 관련된 물건을 훔친 혐의로 체포돼 무장 강도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징역 33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9년간 복역한 뒤 가석방됐다.
사실 법적 소송에 휘말리기 전까지만 해도 심슨은 운동선수, 배우, 광고 모델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던 유명 스타였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소속으로 대학교 미식축구 스타였으며, 이후 1969년 NFL의 ‘버팔로 빌스’와 계약해 1977년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심슨은 NFL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볼캐리어로 손꼽혔다. 1973년엔 NFL 선수 최초로 한 시즌에 2000야드(약 1.8km) 이상을 ‘러쉬(공을 전진시키고자 달리는 것)’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렇게 1979년, 심슨은 영화와 TV 출연에 집중하고자 은퇴했다. 대표작으로는 ‘타워링’, ‘카프리콘 프로젝트’,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 등이 있다.
한편 심슨과 함께 NBC 미식축구 중계도 했던 방송인 밥 코스타스는 심슨이 비록 최초의 흑인 스타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최초의 흑인 스타”였다고 평가했다.
매년 가장 활약한 대학 미식축구 선수를 선정하는 ‘하이스먼 트로피’ 주최 측은 X를 통해 1968년 해당 트로피의 주인공이었던 심슨의 죽음을 애도하며,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코크란, 로버트 카다시안과 함께 심슨의 변호인이었던 칼 더글라스 변호사는 심슨의 사망 소식에 “충격받고 놀랐다”면서 자신과 심슨의 이름은 “어떤 식으로든 영원히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은 성명을 통해 심슨이 NFL 선수로서 쌓은 성과를 나열하며, 이러한 공헌의 기록은 보존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론 골드먼의 부친 프레드 골드먼은 심슨의 죽음은 “그리 큰 상실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프레디 골드먼은 미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겐 그저 아들 론이 지난 몇십 년간 이 세상에 없다는 것만 더욱 상기시킬 뿐”이라면서 “세상에 그리 큰 손실은 아니다. 그저 아들의 죽음을 더욱 상기시켜줄 뿐”이라고 밝혔다.
CNN이 입수한 성명서에 따르면 과거 재판에서 브라운의 가족을 대변한 글로리아 앨레드 변호사는 심슨의 죽음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학대받는 여성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으며, “남성 유명인이 진정한 정의를 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음을 상기시킨다고 언급했다.
유명한 육상선수로 한때 심슨과 친했던 케이틀린 제너는 X(구 ‘트위터’)에 “속이 시원하다”면서 프레디 골드먼과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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