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2년 키이우에서] 마음만은 전장에…우크라 축구선수 "군인들 내경기에 힘내길"

전선 대신 경기장 누비는 ‘무관중’ 프로리그 프랴둔 선수 인터뷰…”승전에 힘보태고 싶다”

개전 6개월만 재개 첫 경기, 공습경보에 6시간 소요…티셔츠 판매수익 모아 전투차량 군에 기부

“게임 캐릭터 무조건 손흥민, 전훈지서 강원FC과 같은 호텔서 묵기도…한국서 뛰고파”

막심 프랴둔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축구경기를 보고 힘을 냈다는 군인들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우크라이나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LNZ 체르카시 소속 막심 프랴둔(27) 선수는 19일(현지시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장에 함께 나가지는 않았지만, 승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날씨가 따뜻한 튀르키예 남부 안탈리아에서 한달여간의 전지훈련을 마치고 이날 막 귀국한 프랴둔 선수를 키이우 외곽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안에서는 득점왕 경쟁을 하는 나름 유명한 선수라고 한다.

그는 대화하는 내내 교전국에서 축구 선수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뒤섞인 생각과 감정을 토로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우크라이나 청소년·스포츠부는 잔여 리그 경기를 전면 중단했다.

프랴둔 선수

공격수 포지션인 프랴둔은 당시 최전선인 동북부 하르키우주(州)의 FC 메탈리스트에 몸담고 있었다.

졸지에 관중과 일터를 잃은 그는 며칠간 집에서 고민하던 끝에 무작정 짐을 싸 들고 전장에서 가장 먼 서부 르비우의 팀 훈련장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같은 신세인 선수 10여명이 모여 훈련장과 방공호를 오가는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정부가 무관중을 조건으로 리그 경기 재개를 선언했다.

프랴둔은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인 그해 8월 24일 FC 루흐 르비우를 상대로 치러진 복귀 경기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처음에는 다시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했다”면서도 “시합 시작부터 종료까지 6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돌이켰다.

전반에도, 후반에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습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계속 울려댔기 때문이다.

몸이 식으며 경기 감각이 무뎌지고, 속이 꺼져 배고픔을 느끼는 등의 문제는 부차적이었다.

라커룸으로 피신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들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는 여전히 무관중으로 진행된다.

프랴둔은 “골을 넣어도 팬들이 없으니 세리머니를 해도 좀처럼 흥이 나질 않는다”면서도 “군에도 팬들이 있는데, 경기 잘 봤다고 연락이 올 때 가장 신난다”고 말했다.

2022년 9월 5일 알렉산드리아팀과의 경기에서 역전골을 기록하고 팀이 3대1로 승리한 다음날 아버지의 친구가 군에서 전화를 걸어와 “네가 골을 넣고 이긴 것을 본 덕에 러시아 탱크를 파괴할 수 있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장병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늘 편치 않다.

프랴둔은 얼마 전 친필 사인한 유니폼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차량을 구입해 군에 전달했다. 우크라이나군에는 전투차량이 부족해 전방에서 이동할 때 개인 차량을 끌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는 새 시즌을 앞두고 키이우에서 동남쪽으로 200㎞ 떨어진 체르카시 연고지 팀으로 소속을 옮긴 뒤에도 군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막심 프랴둔

프랴둔은 “군인들이 내 경기 영상을 보면서 긴장을 풀고, 전쟁의 피로를 잠시 잊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미디어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군에 보탬이 되는 코멘트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시종 심각하던 그의 얼굴은 좋아하는 한국 선수가 있느냐는 물음에 이내 밝아졌다.

프랴둔은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며 “게임을 할 때 무조건 손(손흥민)을 고른다”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게임 화면을 보여줬다.

그는 전훈지 안탈리아의 호텔에 강원FC 선수들이 묵었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한국 리그에서 꼭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21세 이하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는 그는 성인 국가대표에 다시 한번 선발되는 것이 목표다. 오는 23일 다시 리그 일정이 시작된다.

프랴둔은 “전쟁이 난 뒤에 외국으로 떠난 뒤 팀에 관심을 끊은 구단주도 있다”며 “어서 평화가 와서 모두 행복해지고, 우크라이나의 축구도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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