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확대,의료사고 부담 완화…귀담아들어야 할 전공의 요구

전문의 확대,의료사고 부담 완화…귀담아들어야 할 전공의 요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진료 거부로 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21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진료 거부로 인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21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전공의가 20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완료하고 조직적 대응에 나섰다. 전공의들은 이날 심야에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철회하고 비민주적인 탄압을 중단하십시오’라는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단 비대위원장(전 전공의협의회장)을 비롯해 전국 70여개 수련병원 대표 명의의 성명서였다. 여기에서 7개 요구사항을 담았다. 전공의들의 첫 정책 요구이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것 ▶전공의를 겁박하는 부당 명령들을 전면 철회하고 정식으로 사과할 것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을 전면 폐지하여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금지 조항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 세 가지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의료개혁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어서 향후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나머지 4개는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들이다.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고 증원·감원을 같이 다룰 것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을 확대할 것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의 법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할 것 ▶주 80시간에 달하는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할 것이다.

 

정부는 이달 1일 필수의료 패키지에서 네 가지 문제점에 대한 개략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1일 브리핑에서 “(전공의가) 건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사실관계의 인식이 다른 부분이 있고, 많은 부분이 정부와 대화를 통해 해소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전공의 요구처럼 다른 나라는 이런 기구를 상시조직으로 둔다. 인구나 의료 이용 패턴 변화 등을 따져 의사 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추계해 의대 정원을 조정한다. 네덜란드의 의료인력 자문위원회, 일본의 의사수급분과회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올해 중 필수패키지에서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기적으로 의사 인력 수급을 추계하고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수련병원 전문의 확대

  수련병원은 전공의에 의존하는 후진적인 인력 구조를 갖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전체 의사의 46.2%가 전공의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는 40.2%에 달한다. 전공의는 피교육생인데, 이들을 진료 인력으로 활용한다. 대안은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하려면 병원에 전문의가 지금의 두 세배 더 필요하다. 건강보험 진료 수가를 크게 올리거나 예산을 지원해야 가능한 일이다. 의사가 부족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외국은 전공의 현장 진료를 수련과정으로 본다. 전공의 의존도가 매우 낮아서 파업해도 영향이 별로 없다. 전공의 비율 같은 걸 굳이 따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의료 인력 부족, 수가 부족으로 전문의를 채용하기 어려워서 관행적으로 전공의에 의존하는 체제가 굳어졌다”고 덧붙였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정부가 환자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진도 내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1일 브리핑에서 “필수 분야의 사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초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 80시간 근무환경 개선

  전공의의 주당 법정 상한 근로시간은 80시간이다. 실제로 평균 77.7시간 일한다. 연속 36시간 근무 허용도 비인간적이다. 유럽·미국 전공의도 1980년대 주당 100시간 근무했다. 유럽은 파업 등의 싸움 끝에 48시간으로 줄었다. 미국은 1984년 18세 소년 리비 지온이 약물 상호작용으로 숨졌는데 원인이 전공의 과로 탓으로 밝혀지면서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리비지온법을 제정했다. 2003년 연속근무를 24시간으로 제한했다. 

 

복지부는 필수패키지에서 올해 중 36시간 연속 근무를 축소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등의 대책을 담았다. 그러나 전공의 비대위는 21일 성명에서 “정부 대책이 피상적인 단어만 나열됐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조속히 필수패키지대책의 세부 실행 계획을 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문상혁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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