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가 연 韓농산물 프리미엄 시대... 설향, 日 딸기 몰아내고 수출 16배 늘어

우리나라가 20여 년 동안 여러 나라와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해오는 과정에 최대 난관은 늘 농·축산 식품 부문이었다. 상대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이기 때문에 농가 반발이 극심했다. 특히 한·미 FTA 때가 가장 심했다. 칠레와 첫 FTA를 맺으며 자신감이 붙은 우리 정부는 거대 경제권인 미국·중국 가운데 우리 제조업의 수출 시장을 넓히고, 국내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한다는 목적 아래 한·미 FTA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과 FTA를 맺게 되면 우리 농가는 모두 고사(枯死)하고, 먹거리 주권은 미국에 완전히 장악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특히 미국 정부가 FTA 선결 조건으로 내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광우병 사태로 번지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우려와 달리 2010년대 들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급증하는 동안 한우 생산·소비도 함께 늘었다.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2014년의 2.5배로 늘어났다. 미국산의 두배 가격인 한우 생산량도 한·미 FTA 발효 전인 2011년보다 34% 증가했다. 우리 소비자 입장에선 상품 선택 폭이 넓어졌고, 경쟁력이 높아진 우리 농가는 소득이 늘어났다. FTA 부작용이 우려됐던 우리 농축산 식품은 품질 경쟁력을 높여 외국산 공세를 막아내는 것을 넘어 수출을 늘려가고 있다.

fta가 연 韓농산물 프리미엄 시대... 설향, 日 딸기 몰아내고 수출 16배 늘어

그래픽=양진경

2004년 발효한 한·칠레 FTA,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 등 주요 무역협정 때마다 농·축산 식품은 근심의 대상이었다. 매번 국내 시장을 외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농·축산 식품 분야는 FTA라는 외부의 위기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바꿨다. 2003년 16억달러(약 2조2000억원)에 그쳤던 농·축산 식품 수출은 지난해 92억달러가 돼 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FTA 협상 때마다 피해가 수천억원에 달하며 축산 농가가 줄도산하고, 과일 농가는 전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연구기관·대학 등에서 나왔지만, 축산업은 대형화에 성공했고 과일 농가들은 다양한 상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한우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

2012년 한·미 FTA, 2014년 한·호주 FTA 발효 때 미국산 프라임 소고기, 호주산 와규 등이 우리 축산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기우에 그쳤다. 2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21만t이던 한우 소비량은 지난해 27만t으로 늘었다. 적극적으로 품종 개량에 나서고, 각종 광고와 캠페인을 통해 ‘한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한 결과였다. 정부와 농협 등은 한·칠레 FTA가 발효한 2000년대 초부터 암소 개량 사업과 씨수소 형질 보급 사업을 시작했고, 이른바 고기 맛이 좋은 암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2005년 마리당 622.4㎏에 그쳤던 체중은 지난해 735㎏으로 18% 늘었고, 전체 6등급 가운데 1등급 이상 비율은 2004년 35.9%에서 지난해 74.7%로 확대됐다. 외국산을 포함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은 2010년 8.7㎏에서 지난해 14.8㎏으로 크게 늘었다. 돼지고기 또한 한우를 벤치마킹한 ‘한돈’ 브랜드를 만들며, 국내산 돼지고기 생산량은 2010년 76만t에서 2022년 111만t으로 크게 늘었다.

◇감귤, 포도 등 외국산 공세에 수성

축산물뿐 아니다. 한·칠레 FTA 때부터 칠레산 포도, 복숭아, 키위 때문에 전멸할 것이라고 불안해했던 과일은 수출이 크게 늘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플로리다산 오렌지가 들어오며 시장 잠식 걱정이 컸던 감귤은 생산량을 조절하고, 신품종을 내놓으며 대응하고 있다. 윤종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실장은 “한라봉과 천혜향 같은 품종은 감귤 출하가 마무리되는 2월 말부터 3월 사이에 본격적으로 출하하기 때문에 농가 소득을 늘리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딸기는 수출 효자로 떠올랐다. 2005년 개발된 ‘설향’은 국내 농가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품종을 몰아낸 데 이어 동남아 시장에서 고급 과일로 인기다. 2호 FTA인 한·싱가포르 FTA에 이어 2007년 발효된 한·아세안 FTA를 발판으로 지난해 딸기 수출은 2003년(450만달러)의 16배인 7108만달러로 급증했다. 포도와 배도 FTA로 수출 길이 확대된 대표 과일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무역통상연구원장은 “FTA로 위기감이 커진 국내 농업에 R&D(연구·개발)라는 게 도입됐다”며 “해외 농작물이 들어오면서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품질 개선 노력이 커졌고, 그 결과 수출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 수출 82%, FTA 체결국

K-푸드도 FTA 덕을 봤다. 한·미 FTA로 관세(14%)가 사라진 김밥·가공밥 등은 지난해 미국으로 6540만달러를 수출했다. 라면 또한 지난해 세계시장에 20억개(9억5000만달러)를 수출하며 승용차 5만3732대를 판 것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한·미 FTA 발효 전인 2011년 1867만달러에 그쳤던 대미 라면 수출은 지난해 1억5337만달러로 급증했고, 김치 수출은 한·미 FTA 발효 이전의 9배 수준까지 늘었다.

정대희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농식품 수출의 82%가 FTA 체결국과 이루어질 정도로 FTA로 인한 관세 인하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면서 “드라마 등 K컬처 효과에 더해 국내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K푸드에 관심을 키우며 수출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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