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 넘보는 일본 농구 "현실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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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넘보는 일본 농구 “현실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 주전 포워드인 와타나베 유타가 미국 NBA 브루클린 네츠에서 뛰던 모습. 현재는 피닉스 선스 소속이다. AP 연합뉴스

일본 남녀 농구는 아시아에서 만년 3인자였던 때가 있었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줄곧 밀렸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국제농구연맹(FIBA) 세계 랭킹에서 일본은 남녀팀 모두 ‘아시아 넘버 1′(호주·뉴질랜드 제외)이다.

극적 변화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일본 농구의 부흥기를 이끌어 온 히가시노 도모야(53) 일본농구협회(JBA) 경기위원장을 지난달 16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014년 일본 농구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준이 확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B리그 창설하고 일본에 맞는 전략 수립

히가시노 위원장이 말한 ‘위기’는 2014년 FIBA가 “일본의 남자 농구 리그를 일원화하라”고 주문한 것을 말한다. 당시 일본에는 수준이 비슷한 2개 리그가 각각 돌아갔는데, 이는 ‘1국가 1리그’를 원칙으로 하는 FIBA 규정에 위배됐다. 일본은 권고를 제때 이행하지 못해 FIBA로부터 회원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아,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비상이 걸린 일본 농구계는 일본축구협회장 출신인 가와부치 사부로에게 JBA 회장직을 맡겼다. 가와부치는 2016년 남자 통합 프로리그인 ‘B리그’를 창설했고, 프로팀 감독을 지낸 히가시노에게 JBA 경기위원장을 맡겼다. 일본 남녀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히가시노 도모야 일본농구협회(JBA) 경기위원장이 지난 16일 도쿄 JBA 사무실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린 그림을 옆에 두고 서 있다. 도쿄=유대근 기자

히가시노 위원장은 취임 이후 목표를 크게 잡았다. “아시아가 아닌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이를 달성하려면 현실부터 인정해야 했다. 그가 이끄는 JBA 테크니컬 하우스(기술발전부)는 일본 농구의 강약점을 세밀히 파악했다. 특히, 강점이 극대화되도록 대표팀 운영 전략을 짰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일본에는 신장이 크거나 엄청난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가 적었기 때문에, 3점슛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등 득점 효율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일본 남자 대표팀은 빅맨(센터)까지 3점슛을 던지는 ‘5아웃'(전원 외곽) 농구를 지향한다. 그는 “슛성공률을 높이려고 2016년부터 대표팀에 스킬 코치와 슈팅 코치를 뒀는데 효과를 봤다”고 귀띔했다.

히가시노 위원장이 일본 농구 도약의 또 다른 비결로 꼽은 건 ‘외국인’이다. 그는 “일본 B리그와 W리그(여자 실업 리그)의 코치 3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면서 “B리그 코치 중에는 미국 프로농구(NBA) 코치를 해본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일본 남자 대표팀 감독인 톰 호바스도 미국인이다. 그는 2020 도쿄올림픽에선 일본 여자대표팀을 이끌며 은메달을 따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외국인 지도자를 통해 다양한 스타일의 농구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틀에 박힌 농구를 한다’고 평가받던 일본팀이 최근 창의적 플레이를 선보이는 배경에는 외국인 지도자의 역할도 컸다는 얘기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일본 여자 농구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농구계는 특급 유망주가 ‘우물 안 개구리’로 남지 않도록 해외 진출을 적극 권한다. 덕분에 와타나베 유타(29·피닉스 선스), 하치무라 루이(25·LA레이커스) 등 NBA 현역 선수도 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일본 농구 선수 중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진출자는 학생을 포함해 20명 정도”라면서 “만화 ‘슬램덩크’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고가 만든 ‘슬램덩크 장학금’이 있는데 이를 통해 매년 한두 명이 유학을 간다”고 말했다.

유소년 선수를 가르칠 수준 높은 지도자가 많은 것도 눈에 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JBA의 각 레벨에서 지도자 라이선스를 딴 일본인 코치는 전국에 7만8,000명이나 된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는 유소년을 가르치며 일본 농구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하가시노 위원장은 일본 대표팀의 향후 목표에 대해 “남자팀은 매번 농구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이고, 여자팀은 세계 최강 미국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미국 여자 대표팀) 올림픽 8연속 우승에 도전한다면 막아야 한다”며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팀이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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