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귀신고래(서부개체군) 새끼 한 마리가 2007년 러시아 사할린섬 연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멸종의 벼랑에 몰린 서부개체군의 현존 개체수는 250마리로 추정된다. ©NOAA photo library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가스’(GAS)라고 한 제보자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사라진 원인을 알고 있다고 했어요.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죄다 안 보였다는 거예요. 이건 아주 중요한 제보예요. 한국계 귀신고래가 사라진 원인은 지금까지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였거든요.
“귀신고래가 사라진 건 정말 수수께끼야.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동해에 많던 귀신고래가 1966년 다섯 마리가 포경선에 잡힌 이후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거든. 태평양 반대편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에서는 사람들이 귀신고래 머리를 쓰다듬고 악수도 한다고 하던데 말이야.”
귀신고래는 두 개체군이 북태평양을 동서로 나눠 씁니다. 서부개체군(Western North Pacific Population, WNP)은 매년 6월부터 11월까지 오호츠크해 연안과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에서 여름을 보낸 뒤 남하해 남중국해에서 겨울을 나지요. 회유 기간 중에 동해를 지나가 우리가 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서부개체군을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불러요.
반면, 동부개체군(Eastern North Pacific Population, ENP)은 베링해와 알래스카 연안에서 여름을 보내다가 겨울엔 바하르칼리포르니아의 따뜻한 바다로 내려가 새끼를 낳고 기르죠. 이 개체군은 개체수가 증가함에 따라 1994년 미국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삭제됐어요. 조사반장이 다시 혼잣말을 했습니다.
“두 집단은 교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보자 말로는 서부개체군이 동부개체군으로 대규모 이민을 가서 한국에서 귀신고래를 볼 수 없게 됐다는 얘기인데, 그게 맞을까? 아무렴. 귀신고래가 무슨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사반원도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간의 가설은 인간의 과도한 포경으로 인해 서부개체군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귀신고래가 헤엄치는 속도는 시속 7㎞밖에 안 되거든요. 그 정도면 어른이 빨리 걷는 속도밖에 안 되는데, 10미터가 넘는 귀신고래가 그렇게 느려터져선 작살 맞기 십상이죠. 서부개체군은 현재 250마리밖에 남았다는 보고가 있어요.”
“그럼, 현장에 가보지.”
벼랑 끝에 선 한국계 귀신고래
귀신고래(서부개체군)는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적게나마 만날 수 있는 곳이 있긴 해요. 바로 한여름 러시아 사할린섬 북동부 차이보 만이죠.
우리가 헬리콥터를 타고 차이보 만에 접근하자, 누런 모래사장과 거대한 석호가 펼쳐졌습니다. 귀신고래 한 마리가 눈에 띄었어요. 모래사장 가까이 얕은 물에 머리를 박더니 꾸물꾸물 움직였어요. 주변으로 황톳빛 파도가 일었죠. 조사반원이 경탄하며 아는 체를 했습니다.
“저건 귀신고래가 사냥하는 장면입니다. 얕은 바다에 몸을 처박고 모래를 뒤지면서 옆새우나 쏙같은 작은 갑각류를 먹어요. 아이슬란드에 오래된 기록이 있습니다. ‘고래는 모래에 조용히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모래를 던지고 광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누구든 접근할 수 없다’.”
“그 아이슬란드 귀신고래는 사라졌지.”
“네. 맞아요. 문헌으로만 존재하는 북대서양귀신고래입니다. 지금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삽니다. 약 2만6000마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북대서양귀신고래는 고래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15세기 아이슬란드에 방문한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토머스 바르톨린(Thomas Bartholin)이 독특한 생태를 기록한 한 이후 아이슬란드에서는 ‘샌들라이야’(Sandlægja)라고 불렸죠. 물론 그 기록을 전적으로 믿긴 어렵습니다. 고래가 모래 위에 올라오면, 그것은 좌초, 즉, 죽음을 뜻하거든요. 샌들라이야가 정말 고래였을까요? 해안가의 바다사자나 물범을 착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 북대서양귀신고래는 멸종했습니다. 잔혹안 포경의 시대를 피하지 못했죠. 지금 남은 것은 북태평양에 사는 귀신고래 단 한 종입니다. 그나마도 서부개체군은 다 사라지고 몇 마리가 남아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황이고요.
그런데, 정말 서부개체군은 미국으로 이민간 걸까요? ‘정말로 친구들이 이민 갔는지’ 모래밭을 헤치던 귀신고래에게 물어보려고 헬기를 착륙시키던 참이었는데, 그 고래는 화들짝 놀라 먼 바다로 가버리더군요. 허탈했습니다.
러시아 사할린섬 북동부 연안의 석유 및 천연가스 유전 앞에서 유영 중인 한국계 귀신고래(서부개체군). ©NOAA photo library
유전 앞바다로 이사 왔다고?
몇 분이 지났을까. 엔진 소리가 바다에 울리더니, 귀신고래가 사라진 방향에서 고무보트 한 대가 파도를 헤치며 다가왔습니다. 보트 위 사람들은 ‘귀신고래가 행복한 사할린에너지’라는 견장이 붙은 파란 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귀신고래가 행복한 사할린에너지’에서 나왔습니다. 귀신고래 구경하러 오셨군요?”
최고참으로 보이는 사람이 견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해상 유전 앞에서 고래가 뛰는 모습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죠.
“아, 네. 그렇긴 한데…”
“저기 해상 플랜트 보이시죠? 아주 깨끗하고 조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 동부개체군 귀신고래들이 이민 오려고 난리랍니다. 아까 모래 뿌리던 고래 있죠? 그 친구가 작년에 온 고래예요. 올여름이면 그 친구가 모래쇼 하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수평선 너머에 외계 로봇처럼 생긴 해상 플랜트가 서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러시아와 다국적 에너지업체들이 합작 법인을 설립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내고 있는 사할린 프로젝트의 시추 기지였죠.
“저희는 이곳을 생태 관광지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귀신고래가 뛰노는 유전, 멋지지 않습니까? 아까 그 고래는 귀신고래의 전통 식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냉동 쏙캔과 새우깡을 제공하니, 고래는 힘들여 사냥할 필요 없고 공연만 하면 됩니다. 여기로 오겠다는 고래들이 미국에 줄을 섰습니다.”
“그럼, 한국계 귀신고래가 이민간 게 아니라 미국 귀신고래가 이민온 거군요?”
“한국계 귀신고래는 없어진 지 오래됐어요. 우리가 미국 귀신고래를 데려와 한국계 귀신고래를 복원하고 있는 겁니다”
뭔가 수상했지만, 고래에게 물을 방도가 없었죠.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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