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 창립 55주년을 맞는 대한항공이 ‘서스테이닝 엑셀런스(탁월함 지속)’의 기치 아래 100년 항공사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 14조5751억원, 영업이익 1조5869억원으로 우수한 경영 성적표를 받았다.
대한항공의 모체는 대한항공공사로, 적자에 시달리던 공기업이었다. 1968년 9월 중순, 박정희 대통령은 한진상사 창업주이자 조중훈 초대 한진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초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제안했다.
조 창업주는 고심 끝에 한진상사 창립 23주년이던 1968년 11월 1일 대한항공공사 인수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고, 이듬해 2월 27일 14억5300만원에 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해 3월 1일 주식회사 대한항공이 탄생함으로써 본격 대한민국 민항 시대가 개막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보잉 747 여객기 앞에 서있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사진=대한항공 제공
조 창업주는 평소 “수송 사업은 사람 몸의 혈맥과도 같다”며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일념 아래 두둑한 배짱으로 일본 3개 노선 외 미주·유럽 노선을 개설했고, 동시에 화물 사업을 성장시켜 대한항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초창기 대한항공에는 맥도넬 더글라스가 제작한 △DC-9 1대 △DC-3 2대 △DC-4 1대 △F-27 2대 △FC-27 2대 등 총 8대만 있었지만 조 창업주는 대한항공을 30여 년 만에 보유 기재를 113대까지 확대해 세계 10위권 항공사 반열에 올려놨다.
“안전은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선친의 뒤를 이은 일우(一宇) 조양호 2대 한진그룹 회장은 단순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고객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재무 구조 내실화에 중점을 뒀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그는 정비·자재·기획·IT·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고, 글로벌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초일류 항공사로 도약시키기 위해 큰 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대한항공에서는 보잉 747 여객기를 3년 연속 폐기 처분해야 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조양호 당시 대한항공 사장은 ‘절대 안전’이라는 핵심 기치 하에 1500억원을 투입해 델타항공과 항공 안전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운항과 정비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그의 노력으로 대한항공은 최저 항공 보험 요율을 적용받을 정도로 ‘안전한 항공사’ 이미지를 다시금 얻게 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2대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2대 회장. 사진=대한항공 50년사
“저는 대한항공이 ‘리스펙터블 에어라인’으로 남길 바랍니다. 대한항공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업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끔 말입니다. ‘대한항공은 믿을 수 있다’, ‘서비스가 좋다’ 이런 생각을 심는 겁니다. ‘대한항공이 하면 무슨 이유가 있을 테니 한번 검토해 봐라’는 얘기를 듣는 것,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처럼 조양호 회장의 실무와 경영 마인드의 균형감 속에서 다양한 경영 철학이 파생됐고, 실제 경영 시스템에 반영돼 현재까지도 쓰이는 캐치 프레이즈 ‘엑설런스 인 플라이트(Excellence In Flight)’가 생겨났다. 또 기내 ‘고객의 말씀(Voice of Customer)’ 제도를 도입했고 조 회장이 직접 관리해 서비스 수준 제고를 도모했다.
“주변 환경이 결코 유리하지 않더라도 도약을 향한 의지가 꺾여선 안 됩니다.”
IMF 사태는 전국 모든 기업을 강타했다. 조양호 회장 체제의 대한항공은 보유 항공기를 매각 후 임차하는 방식으로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고,보잉 737-800·737-900 여객기 27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역발상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보잉은 항공기 대량 구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여줬고, 기재 도입 금융을 유리한 조건으로 주선해줘 대한항공은 탄탄한 재무 구조를 갖출 수 있게 됐다.
2000년 6월, 대한항공은 델타항공·에어프랑스·아에로멕시코와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고, 글로벌 항공업계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2018년에는 미 연방교통부(DOT)로부터 반독점 면제권을 부여받아 델타항공과의 태평양 노선 조인트 벤처(JV)를 체결했고, 이로써 견고한 실적으로 내며 한층 도약하는 기반을 닦았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역발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2019년 6월 2일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2019년 4월, 조양호 선대 회장이 미국에서 급서하자 조원태 회장이 뒤를 이었고, 같은 해 6월 서울에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를 주관해 우리나라를 글로벌 항공업계의 중심으로 올려놨다. 또한 11조원에 달하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 30대 도입 계약으로 대한항공은 기단 현대화를 이뤄냈고, 탄소 중립을 실천하고 있다.
같은 해 말에는 전 지구적 역병인 코로나19가 창궐했고, 2020년 3월 대한항공은 여객편 운항을 줄이는 대신 여객기 좌석을 탈거해 화물기로 활용하는 역발상을 통해 글로벌 항공업계의 귀감이 됐다. 이어 11월에는 조원태 회장이 재무 부실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격 발표해 ‘제2창업’을 선언했다.
아시아나항공과 통합 시 대한항공은 보유 기재 220여대로 글로벌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국내외 경쟁 당국의 기업 결합 승인을 받았고, 현재는 미 연방법무부(DOJ)의 결정만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재 DOJ에서는 순조로운 심사가 이뤄지고 있고, 올해 6월 말 경 관련 절차가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지 경쟁 당국에 정부의 항공 산업 구조 조정과 고용 유지를 위한 노력에 당사가 동참해 진행했다는 점과 한-미 노선의 승객이 대다수 한국인이라는 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미 강력한 시정 조치를 부과했다는 점, 경쟁 제한이 우려되는 노선이 신규 항공사의 진입과 증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적극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는 분리 매각을 통해 DOJ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며 “에어프레미아가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한 로스엔젤레스(LA)·뉴욕·하와이 노선에 진입했고, 잔여 2개 노선에도 들어갈 예정이어서 경쟁 환경 복원에 따른 긍정적 결과를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박규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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