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외국인 ‘딱지’ 붙는 사람들
밀항한 재일제주인 3세대의 기구한 사연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용희(22)씨가 3대 만에 제주대에 진학한 사연을 소개하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 고 김평수씨는 애월읍 하가리 출신인 ‘재일제주인’이다. 제주4.3의 광풍이 불고 도민들은 살길을 찾아 밀항선에 올라타던 때였다. 겨우 열한 살. 4.3학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먼저 일본으로 떠난 어머니를 만나러 배에 몸을 실었다. 그게 마지막으로 고향을 보는 날인 줄도 모른 채.
‘밀항 1세’가 된 아이들
“빨리 오라!” 함께 승선한 한 여성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작은 그의 몸을 길게 떨어뜨린 치마 속에 감췄다. 밀항밖에는 어머니를 만날 길이 없었다. 제주도와 오사카를 취항하던 군대환이 미군에게 격침당한 뒤였다. 이미 일본 땅에 발을 들인 가족은 전 재산을 바쳐 밀항 중개인을 물색했다. 밀항선을 타면서 삶을 내걸지 않은 이는 없었지만, 머물러 있으면 죽음뿐이었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육지의 식민지로 바뀐 제주에서는 삶을 모색할 방도가 없었다. 4.3학살을 피해 밀항한 제주도민은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생사를 걸고 도착한 일본. 그런데 진짜 추격전은 하선하면서부터. 붙잡히면 수용소행에 강제 추방이다.
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년간 나가사키 오무라 수용소에서 송환된 한국인은 1만6400명이나 된다. 오무라수용소는 제주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나가사키현에 있었다.
‘도로쿠'(외국인등록증)를 내놓으라는 불심검문이 두려운 밀항자들은 길에 함부로 나다닐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한 돌파구는 ‘결혼’이었다. 평수씨는 그렇게 의붓아버지를 맞았다. 해방 후 건너간 ‘밀항 1세’들은 해방 전 군대환을 타고 일본에 간 ‘군대환 1세’의 후손과 결혼하거나 일본인과 위장 결혼해 영주 자격을 얻어냈다.
평수씨는 학생 때부터 아버지 일을 도왔다. 아내를 만난 뒤 포장마차와 라멘 가게를 차렸고, 불혹이 넘어서는 건강식품 회사를 경영했다. 많은 재일제주인이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면서 자립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이 기피한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이 우리 동포 몫이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에서 밥 먹고 살려면, 야쿠자를 하든지 의사를 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동포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재일제주인 3세, 제주로 유학 오다
용희씨는 2021년 9월 제주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제주에 왔다. 말로만 듣던 제주도였다. 요코하마에서 학교를 다닌 그에게 제주는 늘 역사의 장소였다. 학교에서 배운 4.3학살의 아픔이 서린 땅. 눈으로 만난 제주는 특히 바다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제주는 조용하고 평온해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도쿄는 늘 사람으로 붐비거든요. 수도권 학교에는 아무래도 일본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으니까 일부러 제주에 온 것도 있어요. 현지인과 어울리면서 문화도 배우고 한국어도 빨리 더 잘하고 싶었거든요.”
공부 욕심이 앞섰던 걸까? 복수전공까지 신청했더니 수업은 따라가기 벅찼다. 부모님이 지어준 한글 이름 석 자까지 애를 먹였다. 먼저 말하기 전까지 용희씨가 교포 학생인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혼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학생은 유학생끼리 비교해 성적을 내지만 교포 학생은 한국 학생과 경쟁해야 한다. 유학생은 학생회도 따로 두는 등 소통 창구가 열려있지만, 의지할 데조차 없는 교포 학생들은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교포 학생도 한국 학생들이랑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운 좋게 취미활동이 겹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는데, 일단 한국어가 늘려면 한국 친구가 정말 필요하거든요. 잘 섞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우여곡절 끝에 올해 3학년이 되는 용희씨. 어쩌다 보니 가족 중 할아버지 다음으로 가장 오래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온 게 전부였다. 형과 누나들은 고모가 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뒤를 이어 미국 유학길에 오르려 했지만, 코로나19로 무산됐다. 그때 알게 된 게 ‘재일본 제주 출신 교포자녀 미래희망장학’ 제도. 관서‧관동제주도민협회에서 추천서를 써준 학생에게 학교가 장학금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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