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삼성전자 첫 노조 쟁의…회사는 출입문 막았다

[현장] 삼성전자 첫 노조 쟁의…회사는 출입문 막았다

17일 낮 경기 화성 삼성전자 디에스아르(DSR) 타워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을 열어라.” “노조 탄압 중단하라.”

수십년간 ‘무노조경영’을 펼친 삼성전자 사업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쳤다. 고층빌딩 사이로 함성이 메아리치자 노동자들은 신기한 듯 박수를 쳤다. 1969년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쟁의행위를 결정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집회에는 2천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모였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불통’을 비판하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17일 낮 경기 화성 삼성전자 디에스아르(DSR) 타워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집회가 열렸다. 회사와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된 뒤, 지난 8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쟁의행위를 결의한 노조가 기획했다. 손우목 노조 위원장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이후 회사 쪽에서 어떠한 안건 제시도 없이 대화하지 않고 있고, 대화하러 찾아가도 거부당하고 있다”며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장] 삼성전자 첫 노조 쟁의…회사는 출입문 막았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집회가 열린 17일 낮 경기 화성 삼성전자 디에스아르(DSR) 타워의 봉쇄된 1층 출입구 안쪽에서 삼성전자 관계자가 집회 준비상황을 촬영하고 있다.

당초 집회는 사옥 1층 로비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회사가 철제 바리케이드를 동원해 출입문을 봉쇄하면서 사옥 앞 공터에서 열렸다. 회사는 사옥 봉쇄 이유로 ‘안전’을 들었지만, 노동자들은 회사 결정이 ‘불통’을 보여준다며 분노했다. 디에스아르타워에서 일하는 ㄱ씨는 “아침에 바리케이드를 보고 내 회사 출근하는데 쪽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황당했다”며 “회사의 이런 반응에 반발심이 생겨 오늘 노조에 가입하고 집회에 참여했다. 회사의 이런 태도는 직원들에게 노조 가입하라고 등 떠미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안전사고가 우려돼 회사는 로비 대신 화성 사업장 내 버스승강장이나 대운동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회사의 경영실패와 불투명한 임금 산정방식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노조 행사에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여한 ㄴ씨는 “회사는 시장이 좋아 매출이 잘 나왔던 것을 자신의 실력이라 착각하고, 실패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직원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책임을 다하고 있는데, 회사는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고 말해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화성사업장에서 일하는 10년차 직원 ㄷ씨도 “지난해 적자는 이해하더라도 올해 영업이익이 발생해도 성과급을 아예 못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직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방식에 화가 난다”고 했다.

노사협의회를 통한 임금결정 방식에 대한 분노도 이어졌다. 앞서 회사는 노조와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던 중 노사협의회 사원대표와 협의해 올해 임금인상률을 결정했다. 이날 연차를 내고 행사준비에 참여했다는 ㄹ씨는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진짜 직원들을 대변한다면 회사 결정을 그대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고, 다른 직원 ㅁ씨는 “직원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노조와 직원들의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시간 남짓 이뤄진 집회는 팝밴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공연을 함께한 노동자들은 뿌듯해 보였다. 점심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든 조합원도 많았지만, 평택사업장에서 버스를 타고 온 조합원, 연차를 내거나 야간근무를 마치고 온 조합원도 있었다. 한 조합원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가 이렇게 많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다”고 했고, 다른 조합원은 “오늘 집회를 보고 회사도 분명히 느끼는 바가 있으면 한다”고 했다.

노조는 24일 2차 집회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현국 부위원장은 “그날 행사 내용과 형식은 조합원 생각을 들어보면서 결정할 예정”이라며 “더 퀄리티 있는 문화행사가 될지, 파업 선언이 될지는 회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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