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외세에 당하기만 하고, 잔재가 곪은 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발톱의 티눈을 뽑아내듯 우리 과거의 아픈 상처와 두려움을 ‘파묘’해버리고 싶었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말처럼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끌어모은 ‘파묘’는 전통적인 풍수지리에 무속신앙 그리고 고난에 찬 민족사를 녹여낸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잇는 웰메이드 오컬트 영화인 줄로만 알았더니 알고 보니 ‘파묘’의 곳곳에 항일 코드가 숨어있었다. 거기에 3.1절이라는 호재까지 맞아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파묘’는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는 미국 LA 부유한 집안의 장손을 만난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조상의 묫자리가 병의 화근임을 알아내고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묘를 파헤치며 ‘험한 것’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의 정체를 알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다.
장 감독은 네 파트로 영화를 나뉘었다. 전반부는 충실히 오컬트물을 표방한다. 하지만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는 대사처럼 중반부 이후 완전히 변주한다. 비로소 ‘항일’ 코드가 등장하는 것이다. 영화 개봉 이후 온라인상에는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자동차의 번호까지 각종 항일코드를 찾아낸 글들이 게재됐다.
극 중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의 이름은 상덕, 영근, 화림, 봉길이다. 상덕은 임시정부 국무위원, 광복 이후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에게서 따온 것으로보인다. 영근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고영근, 화림은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이화림, 봉길은 윤봉길 의사의 이름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무당 광심(김선영)은 광복군의 오광심, 무당 자혜(김지안)는 신채호의 부인이자 독립운동가 박자혜에서 비롯됐다. 이와 관련해 장 감독은 “많은 독립운동가가 계신데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주인공들이 타는 차량의 번호판은 0301, 1945, 0815이다. 3.1운동과 광복절을 가리킨다. 영근의 사무실 이름은 ‘의열 장의사’이며 험한 것과 사투를 벌이는 ‘보국사’라는 절은 ‘나라를 지킨다’라는 뜻으로 독입운동가인 원봉 스님이 주지사로 있었던 절의 이름과 같다. 쇠말뚝을 뽑으러 다닌 ‘철혈단’도 1920년대 상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이다.
풍수사 김상덕이 묫자리를 볼 때 100원짜리 동전을 던지는 것 또한 관객들의 예리한 눈을 피하지 못했다. 100원짜리 동전엔 이순신 감독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장 감독에 따르면 풍수사들은 일반적으로 10원짜리 동전을 던지는데 촬영 당시 흙과 색이 비슷해 잘 보이지 않아 100원짜리로 선택한 것.
한편 ‘파묘’가 흥행하면서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파묘’와 박스오피스 대결 중인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파묘’가 반일 감정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9일 ‘건국전쟁2’ 제작발표회에서 “다양한 인플루언서들 모니터를 했다. 특정 정치 집단에서 ‘건국전쟁’을 보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더라. 객관적 사실로 만든 작품을, 마음에 안 들더라도 본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나. 지령이 내려온 것 같았다. 10개 되는 유튜버가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솔직하게 이제 더 이상 반일, 항일 근거도 없는 민족감정을 악용하는 영화보다는 대한민국 구한 사람이 누구인지 진실의 영화에 눈을 돌려달라”며 “‘파묘’를 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녔다. 저들도 우리 영화를 보지 않는데, 굳이 그런 사악한 악령이 출몰하는 영화에 ‘서울의 봄’ 1300만 올린 것처럼 엉뚱한 짓 하지 말자. 그게 중요한 이유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올 김용옥이 이승만 대통령 묘지를 ‘파묘’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 일이 떠올라 불쾌했다. 뭘 보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묘’는 순항 중이다. 손익분기점(BEP)도 가뿐히 넘었고 할리우드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신작 ‘듄: 파트 2’도 꺾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주말 600만 관객 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3.1절엔 꼭 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최종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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