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의 롤 모델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투수도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한화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투구하고 있는 장민재.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투구하고 있는 장민재. 사진 한화 이글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장민재(34)는 지난해 12월 생애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지난 15년간 몸담았던 한화와 2+1년 최대 8억원에 사인했다. 보장 기간과 금액은 2년 4억원. 큰 규모의 계약은 아니다. 그래도 장민재는 “한화에서 계속 뛸 수 있어서 정말 좋다”며 기뻐했다.
한화의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장민재는 “한화에서 벌써 16번째 시즌을 맞는다. 앞으로 20년을 채우는 게 목표”라며 “그러려면 이번 계약이 끝나고도 1년은 더 해야 한다. 그래서 아프지 않고 올해 잘 해보려고 몸을 잘 만들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장민재는 2009년 한화에 입단했다. 이듬해 1군 무대에 데뷔했고, 2011년 36경기에서 87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해 1군 투수로 자리 잡았다. 이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한화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10승이나 10홀드를 해본 적도 없고, 도중에 팔꿈치 수술을 받는 위기도 겪었지만, 늘 자신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묵묵히 한화 마운드의 한 자리를 지켰다. 남들 눈에는 소박해 보일 수 있는 한화와의 첫 FA 계약도 장민재에게는 15년 세월의 보상이나 다름없었다.
장민재는 실제로 “지금까지 잘 버틴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 같은 선수들은 어떤 성적이나 결과를 떠나, 일단은 프로에서 버티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결국 잘 버텨서 여기(FA 계약)까지 왔으니 그 점에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는 장민재.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는 장민재. 사진 한화 이글스
‘투수 놀음’인 프로야구는 에이스를 중심축으로 굴러간다. 그러나 장민재 같은 ‘톱니바퀴’가 튼튼하지 못하면 한 시즌을 무사히 마칠 수 없다. 장민재는 “냉정하게 말해, 나처럼 되고 싶은 후배 선수가 어디 있겠나. 다들 류현진(한화) 김광현(SSG 랜더스) 양현종(KIA 타이거즈) 선배님들 같은 투수를 꿈꾸면서 야구를 할 거다”라며 “하지만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 선수도 자기 장점 하나를 잘 살리면 그래도 버틸 수 있구나’, ‘장민재 선배님 같은 선수도 프로에서 충분히 롱런할 수 있구나’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다. 나중에 야구를 그만두더라도 그거 하나만 남기고 싶다”고 털어놨다.
장민재는 오랜 기간 ‘류현진의 절친(절친한 친구)’으로 유명했다. 2013년 류현진이 메이저리그(MLB)로 떠난 뒤에도 매년 겨울 해외 전지훈련을 함께해 온 ‘영혼의 파트너’였다. 한화의 후배 투수들을 류현진에게 소개해 그 기회를 함께 나누기도 했다. 류현진이 한화 복귀를 결정하면서 한창 떠들썩하던 시점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관련 질문에 대답하느라 웬만한 구단 직원보다 바빴다.
그래도 장민재는 “현진이 형이 워낙 거물 아니냐. 당연한 일”이라며 “현진이 형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야구를 했다. 형의 측근으로 함께 거론되고, 많은 분이 내게 형 얘기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오히려 영광”이라고 했다. 또 “형이 오고 나서 신구 조화가 잘 이뤄진 느낌이다. 정말 투수들 전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분위기도 무척 좋아졌다. 사소한 것도 형에게 물어봐 가면서 기분 좋게 캠프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오른쪽)과 함께 훈련하고 있는 장민재. 연합뉴스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오른쪽)과 함께 훈련하고 있는 장민재. 연합뉴스
장민재는 아직 류현진을 어려워하는 후배 투수들에게는 오히려 “직접 가서 물어보라”는 조언을 한다고 했다. “내가 형에게 ‘누가 뭘 궁금해한다’고 전해주는 것보다는 본인이 직접 가서 얘기하고 답을 듣는 게 훨씬 배우는 게 많을 거다. 아직은 어려울 수 있지만, 먼저 다가가면 형이 분명 잘해줄 거다”라고 독려했다.
류현진이 복귀한 한화는 단숨에 강력한 가을야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장민재는 “올해는 아프지 않고, 팀도 좋은 성적을 내면서, 예전부터 같이 땀 흘렸던 사람들과 즐겁게 야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현진이 형이 8년 계약을 했으니, 나도 일단 향후 4년은 더 뛰는 걸 목표로 삼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거듭 의지를 다졌다.
오키나와=배영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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