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저널리스트가 쓴 신간 ‘웨이스트 랜드’
쓰레기장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더러운 것이라면 적어도 외면하거나 피하려는 습성이 인간에겐 있다. 미관상 좋지 않고, 냄새도 고약한 쓰레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쓰레기가 나온다. 하지만 대개 그 잔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관심 밖이다. 통찰력 있는 소설가 돈 드릴로는 소설 ‘언더월드’에서 “쓰레기는 비밀의 역사이자, 하위역사”라고 썼다. 그에 따르면 쓰레기는 숨기고 싶은 어떤 비밀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 쓰레기를 대하는 방식은 가령 이런 식이다. 쓰레기차는 사람들이 보기 힘든 새벽이나 밤늦게 돌아다닌다. 폐기물 시설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교외에 있는 경우가 많다. 폐기물 처리 산업에 대해 알려진 정보도 별로 없다. 수에즈, 비파,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지만 신문 지면에선 만나기 어렵다. 세계 고형 폐기물 처리 산업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달함에도 그렇다.
말레이시아 음식물 쓰레기
이 같은 인간의 외면 속에 쓰레기 규모는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태평양에는 쓰레기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 생겨났다. 매년 바다에 버려지는 약 1천100만t의 플라스틱이 환류로 한 곳에 모이면서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프랑스 크기의 세 배나 되어버렸다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베레스트산에서도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발견된다. 심지어 우주에도 인간이 버린 수많은 쓰레기가 떠돈다. 그중에는 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테슬라도 있다.
해양 쓰레기
실제 개인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버린다. 2016년을 기준으로 영국에선 인당 매일 1.1㎏의 쓰레기를, 미국에선 인당 2㎏을 버린다. 고형 쓰레기 집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국에선 약 20억명이 쓰레기를 바다나 강에 그냥 버리거나 태워 버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염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집하시설에서 쓰레기가 폐기되는 건 그나마 낫지만, 여기도 형편이 썩 좋은 건 아니다. 파키스탄 라호르에 있는 한 쓰레기 매립장에선 시간당 126톤의 메테인이 나온다. 약 6천200대의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메테인 배출량과 같은 규모다. 가장 안전한 매립 시설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설이 부식되면 어쩔 수 없이 내용물이 유출된다. 쓰레기는 빠져나갈 구멍을 야금야금 만들어내고, 자연은 안으로 들어올 방법을 어떻게든 찾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국 저널리스트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가 쓴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쓰레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도 쓰레기 매립장부터, 폐허로 변한 미국의 광산, 영국 런던 강가의 오염수, 핀란드의 핵폐기장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쓰레기가 가져온 지구 온난화의 실상과 수많은 환경 오염, 그리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핵폐기물 드럼통 모형
책에 따르면 쓰레기는 국경을 넘나든다. 선진국은 쓰레기를 국내에서 고비용으로 처리하는 대신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고, 그곳에선 적은 비용으로 쓰레기를 재활용하거나 폐기한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오염물질이 나와 현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전자제품 업계나 의류 업계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멀쩡한 생산품을 폐기하기도 한다. 가령 스마트폰의 배터리 수명을 일부러 줄여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는 이 같은 소비 생활, 생산 관행을 당장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동시에, 투명한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기업의 ‘그린 워싱'(Greenwashing)을 제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린 워싱이란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만약 인간의 이런 자정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쓰레기 더미는 “미래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RHK. 480쪽.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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