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질환을 앓던 중 암까지 발병해 항암을 여러 차례 한 환자가 의사 파업의 직격탄을 맞았다.
70대 노모의 보호자로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다니던 자녀 A 씨는 27일 한경닷컴에 “어머니는 여러 과의 진료를 받았다. 이날은 호흡기내과 예약 관련 연락이 왔는데 해당 교수가 이번 파업사태로 진료가 안 되니 다른 교수에게 변경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방적 통보에 선택의 여지 없이 따라야 했다”고 전했다.
A씨 어머니가 앓고 있는 질환은 ‘비결핵항산균폐질환’. 배양을 통해 균을 확인하고 해당 균에 맞는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 성과가 10%밖에 안 되는데 비해 항생제 치료의 부작용이 커서 몇 년째 추적관찰만 해오던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방광암까지 진단돼서 경요도수술을 받고 이후 요루수술에 이어 항암을 여러 차례 한 터였다.
A 씨가 바뀐 외래 시간에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교수는 다짜고짜 “환자분 병명을 뭐로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A 씨에게도 어려운 병명인데 70대 후반 노모가 그걸 알고 계실리가 없었고 ‘폐에 균이 있다고 하던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환자 본인이 병명을 알아야 병을 치료하지 않겠나. 자 세 가지 약속을 꼭 합시다”라고 운을 뗐다.
“첫째 약을 먹듯 일주일에 세 번 고기를 드세요. 둘째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걷기는 운동이 아닙니다. 실내 자전거 하루 한 시간 이상 타세요. 셋째 잘 주무셔야 합니다. 하루 여덟시간 이상 꼭 자고 잘 수 없으면 자도록 환경을 만드세요. 약은 안 드릴 겁니다. 약이 간과 콩팥을 거쳐서 해독돼야 하는데 환자분께 그건 무립니다. 약 대신 고기 드시고 운동하세요. 이거 안 지키면 1년 이내에 피 토하고 죽습니다.”
A 씨는 “교수님이 너무 무섭게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저도 어머니도 놀랐다”면서 “진료실에 나와서 ‘엄마 교수님 말씀 틀린 거 없잖아요. 서운하다고 생각 말고 교수님이 하신 말씀 꼭 지켜봐요’하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A 씨 속마음 또한 ‘참, 말도 싹수없게 무섭게도 하네’라고 생각이 됐고 마음도 상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진료 당일 저녁 8시. A씨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더니 “아까 진료 본 고대구로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입니다”하는 음성이 들렸다.
교수는 “혹시 환자분 스쿼트가 가능하시겠냐. 가능하면 그 운동이 좋은데 안된다면 실내 사이클 아래쪽 페달 말고 앞쪽에 페달 있는 게 운동 효과가 좋으니 그걸로 해라. 허벅지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CT를 자세히 보니 콩팥도 문제가 있었는데 알고 계시냐”라며 “이럴수록 약도 조심히 드셔야 하고 CT 찍을 때 조영제 부작용도 조심해야 하니 물을 촬영 전날 2리터 촬영 당일날에도 2리터 이상씩 꼭 드시게 해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환자분은 고령에 체력도 안 돼서 우리 과에서 약물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니 주요 병에 대한 항암 휴약기인 이때 체력을 만들어 다음 투약을 대비해야 한다”면서 “고기 드셔야 한다. 장어가 고단백이라 제일 좋고 고기 안 되면 생선, 그조차 안되면 두부 계란 등 식물 단백질이라도 꼭 드시게 해야 한다”며 온갖 얘기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A 씨는 통화하다 울컥해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는 “암 수술을 두 번이나 하면서 주치의 교수에게 듣지 못한 당부사항을 처음 본 교수, 그것도 본인 환자도 아니고 후배 교수가 파업으로 진료실을 비워 떠맡은 환자에 대해 이토록 늦게까지 병원에 남아 당부해주다니”라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실사판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의사 선생님이 진짜 의사지 싶고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난 25일 고려대학교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공개하고 집단사직에 동참했다.
앞서 비대위가 의료원 산하 안암, 구로, 안산병원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단체행동에 찬성한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교수는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비방 및 협박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정부에 진정성 있는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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