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님, 하고 싶은 것 빼고 다 하세요

윤 대통령님, 하고 싶은 것 빼고 다 하세요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생중계 머리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님, 하고 싶은 것 빼고 다 하세요

황준범 | 정치부장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참패에 “죄송하다” “잘못했다”고 했다는데,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그 말을 어떤 얼굴로 어떻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생중계된 국무회의 앞부분 12분 동안에는 하지 않은 말을, 윤 대통령이 나중에 했다고 대통령실 참모가 기자들에게 전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는 말 못 하다가, 편한 자리에서 내심을 드러냈다는 걸까. 아니면 생중계 발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깨닫고 ‘이 정도가 더 있어야 한다’며 뒤늦게 추가한 걸까.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과 참모진 회의에서’ 그런 발언이 있었다는 설명은 또 무슨 뜻인가. 어느 경우든 큰 의미는 없다. 대통령은 메시지 전달에 실패했고, 국민은 무례를 당했다.

우리는 지난 2년을 거치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첫째, 윤 대통령이 앞에 나서면 상황이 호전되는 게 아니라 악화한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를 “박절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던 2월 한국방송(KBS) 대담이 그랬고, 대화보다 결전 의지를 드러낸 4월1일 의대 증원 관련 51분 담화가 그랬으며, 이번 총선 참패 메시지가 그러했다. 윤 대통령은 시간을 끌다가 힘겹게 나서지만, 그때마다 국민들의 기대와 상식을 벗어나, 화를 돋운다.

둘째, 윤 대통령의 소통 능력은 딱할 지경이다. 소통과 거리가 먼 방식으로 소통을 말하고,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픈 말을 한다. 윤 대통령은 16일 “소통을 강화하겠다”면서도 일방적 형식을 택했고, ‘공개 발언’과 ‘비공개 발언’이 뒤섞여 핵심도 혼란스럽다. 또 정책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이 체감하기에 부족했다’고 했는데, 방점은 ‘성찰’에 있나, ‘성과 환기’에 있나.

셋째, 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인식도 굳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자세를 낮췄던 모습은 자주 있었다. 2022년 여름, 취학연령 하향 논란 등으로 취임 석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을 때 윤 대통령은 “제가 해야 할 일은 늘 초심을 지키면서 국민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뒤 “국민은 늘 옳다”고 했고, 이번에도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다.

1년8개월 전 이 자리에 “다음 총선을 ‘윤석열’로 치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 있다. 당시 글에서 총선 출마 뜻을 지닌 여당 인사들은 “윤 대통령 태도가 안 바뀔 것 같고, 김건희 여사와 그 주변 통제도 잘 안될 거 같다” “이 상황이면 윤 대통령 내걸고 선거 못 나간다”고 했다. 시간은 이들의 말대로 흘렀고, 윤 대통령은 임기 전체를 여소야대 국회와 함께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초 말했던 “거의 식물 대통령” 상황이다.

남은 3년, 윤 대통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탄핵·개헌 저지선은 지켰다지만, 윤 대통령 뜻대로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새 국회에서의 여당 108석은, 윤 대통령 중심으로 총선을 바라보며 어쨌거나 함께 달려온 지금까지의 114석과는 비교할 수 없이 허약한 숫자다. 여당 내 윤 대통령 구심력은 가파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 하기엔 남은 시간이 길다. 믿음도 기대도 내려놓은 국민들의 마음을 지금이라도 다시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수밖에 없다. 국정 운영의 상당 부분을 국회로 넘겨서 여야 타협의 정치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야당 대표를 만나 국정 전반에 관해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파격적 야권 인사 기용도, 그렇게 윤 대통령의 진정성이 확인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동안 여당 대표들을 맘대로 갈아치웠던 윤 대통령이 이제는 여당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의 ‘공정’ 의지와 ‘변화’의 진정성을 시험할 ‘채 상병 특검법’이나 ‘김건희 특검법’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듣기 어려웠던 ‘윤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 같은 얘기가 이제는 제도권에서 진지하게 거론된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도 국민들 분노와 절망만 키운다면 또 어떤 얘기들이 공론장에서 불붙을지 모른다.

[email protected]

News Related

OTHER NEWS

황일봉 전 광주 남구청장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 사죄"

정율성 사업 철회 촉구 집회 참석한 황일봉 전 회장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황일봉 5·18 부상자회 회장이자 전 광주 남구청장은 28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범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 Read more »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대입 준비, 기본에 충실한 ‘적기교육’이 정답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인 17일 대구 수성구 정화여고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가채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 Read more »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서울 도봉구,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 완료…보행로 확장·조명 설치 오언석 도봉구청장이 지난 24일 우이천 제방길 정비공사 현장을 주민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진=도봉구청 서울 도봉구(구청장 오언석)가 우이천 제방길 정비 공사를 완료하고 ... Read more »

허재현 기자 "최재경 녹취록, 신뢰할만한 취재원에게서 확보"

검찰 피의자 조사…”공수처에 검찰 관계자 고소” ‘대선 허위보도 의혹’ 허재현 기자, 검찰 피의자 조사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이도흔 기자 =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한 허위 보도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받는 ... Read more »

‘담배 모르는 세대’ 세웠던 뉴질랜드…세수 모자라 금연법 철회

한 남성이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음 세대 완전 금연을 목표로 한 뉴질랜드의 야심적인 금연 대책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27일 출범한 뉴질랜드의 중도 우파 국민당 주도의 연정은 2009년 1월1일 ... Read more »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수억 광고 수익 숨기고 해외 여행 유튜버’, 재산 추적한다 김동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지능적 재산은닉 고액 체납자 집중 추적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명 유튜버 A씨는 매년 수억 ... Read more »

식사 직후 '과일' 먹는 습관… 당장 멈춰야 하는 이유

건강을 위해 매일 과일을 챙겨 먹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일도 언제 먹느냐에 따라 몸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식사 후 곧바로 과일을 먹는 습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 Read more »
Top List in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