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고도 가족이야?" 상속 노리고 아버지 장례식장에 등장한 이복동생…연상호 감독이 그려낸 '선산'속 비극 [TEN리뷰]

*넷플릭스 ‘선산’에 관한 주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지내잖아요. 가족인 듯 남인 듯”

‘선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윤서하(김현주)는 가족(家族)이라는 본질에 대해 이렇게 읊조린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연상호 감독은 조상의 무덤 또는 그것이 있는 산을 뜻하는 선산(先山)이란 형태를 빌려와 기형적인 구성원의 모습을 발굴하고는 이내 해부하기에 이른다. 가족 내부의 오래된 진실 안에는 태초에 무엇이었는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쿰쿰한 냄새가 풍겨오기까지 한다. 윤서하는 지독한 악취에도 그 진실이 향하고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

잘 알지도 못하던 작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선산을 물려받게 된 윤서하는 관심조차 없던 가족의 비극에 지독하게 얽히게 된다. 탈륨이 들어간 막걸리를 먹어 사망하게 된 작은 아버지 윤명길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윤서하 앞에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김영호(류경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줄곧 소식조차 모르고 살아왔건만. 작은아버지의 장례는 무슨 일이고, 이복동생은 웬 말이냐. 당혹스러움에 휩싸인 윤서하의 심경과는 달리 선산을 둘러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은밀한 욕망을 그녀에게 들이밀기 시작한다.

윤명길의 사망으로 유난히 들떠있는 마을 분위기와 함께 윤서하에게 상속된 선산을 구매해 멈췄던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려는 마을 이장 육성수(김재범), 필라테스 학원의 회원과 몰래 바람을 피는 남편 양재석(박성훈)와 김영호의 선산에 관한 권리 주장,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끝내 되지 못해 선산으로 새로운 희망을 본 윤서하 본인까지. 선산이 불러온 파문은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하면서도 베일에 감춰진 듯 은밀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덥수룩한 수염에 음침한 눈빛으로 “누님”을 연신 외쳐대는 김영호의 존재는 윤서하에게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자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가장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무속 신앙에 빠져든 김영호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기이한 모양새다. 연상호 감독이 구상한 세계관 안에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한국화를 전공한 윤서하의 특성마냥, 깊은 땅속에 숨겨왔던 진실은 매화의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 연결된다. 와중에 선산 상속이 결정된 윤서하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둘씩 사냥 총에 의한 타살을 당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갓길에 내린 남편 양재석도, 심부름센터의 강홍식 사장(현봉식)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대대로 내려오는 선산 상속으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지속되자, 형사 최성준(박희순)과 박상민(박병은)은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만 실체는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선산’은 서스펜스나 스릴러보단 지리멸렬(支離滅裂)한 가족상을 보여주는 잔혹극에 가깝다. 말미에 다다라, ‘선산’이 잉태한 진실이 드러난다. 윤서하의 이복동생이었던 김영호는 죽었다고만 전해 들었던 고모 윤명희(차미경)의 아들이었다. 즉 근친을 통해서 태어난,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아들에게 선산을 물려주고 싶었던 윤명희는 스스로 그림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삶을 살아왔고 윤서하의 주변 인물들을 살해했다.

이는 ‘선산’이 설정한 두 개의 서사 축과 맞물린다. 하나는 윤서하를 비롯한 윤씨 일가의 은밀한 비밀이며 다른 하나는 최성준 형사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초반부터 박상민 형사와 앙숙에 가까운 관계로 그려지던 최성준 형사는 또 다른 잔혹극을 마주한 한 아버지다.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최성준의 아들은 원치 않게 아버지를 칼로 찔러야 하지만, 그 공간에 대신 나타난 것은 동료 형사였던 박상민이었다. 윤서하가 물려받은 것에는 단순히 선산이란 물질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함께 엉켜 붙어있는 가족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이 택한 소재와 이야기는 딱 맞는 퍼즐은 되지 못한 것만 같다. 근친상간을 ‘고결한 사랑’이라고 성토하는 윤명희의 울부짖음과 윤서하의 욕망은 따로 떨어진 채 존재하고, 김영호를 위한 어머니로서의 희생은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에서 ‘가족’, 특히 부성애와 모성애는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소재였다. 가족의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의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은 숭고한 업적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부산행'(2016)에서 감염된 이들이 타고 있는 열차 안에서 자신의 어린 딸 서수안(김수안)을 지켜내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 서석우(공유), ‘지옥'(2020)에서 엄마 송소현(원진아)은 고지를 받은 자신의 아이 튼튼이를 지옥의 사자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끌어안아 불탄 시체가 되어버린다. ‘정이'(2023) 역시 마찬가지다. 전설의 용병이자 식물인간이 된 윤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전투 A.I.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위해 딸 윤서현(강수연)은 연구팀장이 되어 참여한다. 이후 윤서현이 죽음의 위기를 겪자 윤정이의 뇌를 복제했던 A.I.는 마치 자신이 엄마인 양 그녀를 구해낸다. ‘선산’ 또한 김영호의 엄마가 죽은 듯이 존재를 감추고 살아오던 삶과 선산 상속을 위해 다른 이들을 살해하던 모습은 희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만, 전작들과 달리 커다란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일상성이 제거된 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다만, 연상호 감독과 연출을 맡은 민홍남 감독은 ‘가족’이라는 본질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탐구하고 연구하기를 거듭한 것만 같다. “가족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개념이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면에서 무속적인 이미지를 더했고 결과적으로 업보, 액막이, 죄의 대물림 같은 단어들이 무속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더라”라는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가족의 모습은 ‘선산’ 안에서 엿볼 수 있다. 6화의 김현주의 마지막 대사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에 가까운 가족에 관한 정의가 아닐까.

‘선산’ 1월 19일 넷플릭스 공개. 총 6부작. 민홍남 감독 연출, 연상호 감독 각본 및 기획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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