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살에 녹아 든 감칠맛… 기다림도 담백해지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숙소의 퇴실 시간에 맞춰 방문한 파주의 맛집, ‘심학산 생선굽는마을’은 누구나 다 같은 생각이었을까. 분명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주차장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맛을 본 생선구이는 담백하고 감칠맛이 돌았다. 이곳은 기다림이란 지루함을 성취감으로 마무리해 줄 수 있는 곳이다.

생선살에 녹아 든 감칠맛… 기다림도 담백해지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생선굽는 마을의 밥상

◆파주 심학산 생선굽는마을

 

파주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선산이 파주에 있어 어린 시절 명절이면 파주로 서울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설날 산소에서 내려다본 전날 내린 눈 속에 잠겨 있는 마을의 설경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매해 가족들과 성묘하고 집에 오면서 들렀던 음식점들은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있었다던 오래된 자장면집이나 밥이 늦게 나와 짜증이 났지만 맛있었던 고깃집, 엄청 추운 날 먹었던 얼큰했던 버섯 전골집 같은 곳 말이다. 상호명이 생각 안 날 정도로 옛날이지만 그 감성과 그 분위기 속 부모님의 얼굴이 참 생생하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내 가족이 생겼다. 가족과 함께 파주의 한옥 펜션에서 하루를 묵고 집에 가는 길 와이프가 찾은 음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심학산 입구부터 음식점들이 즐비했는데 눈에 익은 동네라 신기했다. 예전 분명 가족들과 찾았던 곳이 틀림없었다. ‘이 동네가 그 동네구나’라고 감탄하며 목적지로 가는 중 넓은 주차장이 이미 만차라 주차할 자리가 없는 음식점이 보였다. 가족들을 먼저 내려 주고 주차를 하러 좀 멀리 갓길에 차를 대고 걸어갔다. 앞에 15팀이 남아 있다는 말에 절망감이 들었다. 이런 맛집을 사전에 알아보지도 않고 온 스스로를 책망하며 대기석에 옹기종기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심학산 생선굽는마을은 불경기를 모르는 것 같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원체 줄 서서 먹는 걸 꺼리는 나였지만 차례가 다가올수록 오는 기대감과 이유를 모를 고조되는 감정이 즐거웠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곧 자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젊은 사장의 친절하고 자신 있는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으니 때깔 고운 반찬들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생선구이 2인분과 고등어찜을 시키고 북적거리는 가게를 둘러보았다. 직원들의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생선구이가 나오기 전 우렁찬 목소리로 “누룽지 나왔습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그에 맞춰 사람들이 우르르 줄을 서기에 나도 얼떨결에 줄을 섰다. 냄비밥을 짓고 남은 눌어붙은 밥에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었는데 이게 참 식전 애피타이저로 아주 그만이었다.

 

가게에 들어올 때도 줄을 섰는데 누룽지도 줄을 서서 가져오니 조금 웃음이 났다. 자리로 돌아오니 생선구이가 나와 있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그 영롱한 자태에 침이 고였다. 젓가락질을 하려는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생선구이의 자글자글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어지럽혔다. 그 향만으로도 생선굽는마을에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생선살에 녹아 든 감칠맛… 기다림도 담백해지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생선구이.

◆생선구이와 고등어 김치찜

 

생선구이는 고등어와 임연수어, 가자미가 나왔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생선은 분명 초벌해 방치해 둔 생선의 자태가 아니었다. 고등어의 노릇한 껍질을 벗겨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살코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잘 구운 생선 육즙의 감칠맛은 어느 재료와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가자미는 겨자간장에 찍어 밥에 얹어 먹으니 간이 딱 좋았다. 가자미의 담백함은 어찌 보면 고등어의 감칠맛에 밀리기 십상인데 이곳 생선굽는마을의 가자미는 유독 살이 통통해서인지 고등어보다 젓가락이 더 많이 갔다. 가시가 많은 임연수어는 직장 생활 때 직원식당에서 참 많이 나왔던 것 같아 원래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의 임연수어는 마치 고등어와 가자미의 사이를 중재해 주는 듯, 적당한 바다 향과 감칠맛 그리고 다른 두 생선보다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져 이 세 생선이 이곳의 주역인 이유를 말해 주는 듯했다.

생선살에 녹아 든 감칠맛… 기다림도 담백해지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고등어김치찜.

고등어김치찜은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보글보글 끓여서 나오는 고등어김치찜은 사실 테이블에 놓을 때부터 들리는 그 소리와 얼큰한 향만으로도 이 식탁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큼지막하게 토막 난 고등어는 김치의 칼칼한 맛과 함께 생선구이 맛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데 맛깔나게 양념에 무친 반찬들을 먹을 때 이미 짐작할 수 있던 사장님의 손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심학산 생선굽는마을은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아들은 입구에서부터 손님을 안내한다. 맛집이기에 당연히 손님을 밀어 넣어 받는 곳이 아니라 오랜 시간 대기한 손님을 한 분 한 분 오롯이 대접하는 느낌이 났다.

 

생선살에 녹아 든 감칠맛… 기다림도 담백해지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구운 생선 파스타.

◆구운 광어를 올린 제노베제 파스타

  광어 100g, 레몬 슬라이스 1개, 스파게티 면 150g, 관자 2개, 마늘 5톨, 면수 150㎖, 바질 페스토 80g, 가루 파르메산 치즈 1큰술, 페페론치노 1작은술, 블랙 올리브 3알, 소금 약간, 후추 약간, 버터 1큰술, 포마스 올리브오일 30㎖.   ① 광어는 소금간을 약간 해 준 후 관자와 함께 오일을 두른 팬에 구워 준다. ② 향이 나면 편 썬 마늘을 넣어 마늘을 구워 준다. ③ 광어와 관자는 뒤집어 익혀 준 후 익으면 건져 준다. ④ 팬에 면수와 바질 페스토, 페페론치노, 가루 파르메산 치즈, 블랙 올리브를 올리고 끓여 준다. ⑤ 스파게티 면을 넣고 버무려 준 후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접시에 담아준다. ⑥ 구운 광어와 레몬 슬라이스를 올려 마무리해 준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 셰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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