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 헌화, 추모사…철거 위기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곱씹은 10년

묵념, 헌화, 추모사…철거 위기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곱씹은 10년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 기억식에서 가수 손현숙씨가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김채운 기자

2014년 4월16일, 그리고 10년 후 오후 4시16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10년 전 이날, 배 안에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사진 앞에 꽃을 놓았다.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섰다. 남자와 여자, 소년과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부모와 자식이 한 데 모여 지난 10년의 기억을 곱씹었다. 승복을 입은 비구니는 사진 앞에 꽃을 놓고 조용히 합장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년이 되는 16일 오후 4시16분, 서울특별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 기억식이 열렸다. 평일 낮에 열린 행사인데도 150명 넘는 시민이 모여 묵념과 헌화, 추모 발언을 이어갔다. 동료 시민들의 발언을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발언자로 나선 박수빈 서울시의원은 “다들 10년 전 아침을 떠올리실 것 같다. 저도 로스쿨을 다니던 10년 전 이날, ‘전원 구조’ 뉴스에 휴대전화를 덮고 공부를 했다. 그 죄책감으로 변호사가 된 첫해에 세월호 재판 기록팀에 들어갔다”며 “제게 세월호 참사는 그 안에서 웃으며 물이 차오르는 영상을 찍던 아이들과, 마음을 부여잡고 읽었던 304명의 시체검안서와, 배가 뒤집힐 때의 그 많은 영상”이라며 울먹였다. 박 의원은 이어 “세월호 기억공간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데, 의회도 시장도 이 공간을 제대로 유지하고 싶지 않아 하는 기류가 있어 막아내느라 고생 중”이라고 말했다.

묵념, 헌화, 추모사…철거 위기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곱씹은 10년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 기억식에서 한 시민이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은 2021년 8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 때문에 철거된 뒤 이곳으로 옮겨 왔다. 그 뒤에도 서울시의회는 기억공간을 철거하라며 변상금을 부과하거나 계고장을 보내고 있다. 전기도 저녁 6시까지만 들어온다. 기억공간을 여섯 달째 지켜 온 유혜림 활동가는 “도심 한가운데 단전의 시간, 한파의 추위를 버티고 견디면서 문득 제 앞에 놓인 사진 속 얼굴들과 함께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루에도 (기억 공간을 찾는) 십수 분의 낯선 얼굴들 속에서 각자의 기억이 담긴 표정을 보게 된다. 그 얼굴들이 가진 힘이 기억 공간을 버티고, 지킬 수 있게 하는 큰 동력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이헌준군은 이날 기억식 발언을 위해 전남 영광군에서 서울로 왔다. 이군은 “(단원고) 형 누나들도 꿈과 희망 가득한 꽃다운 나이였을 텐데, 그래서인지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면 더 뭉클한 것 같다”며 “앞으로 20, 30, 50주기가 돼도 이날을 잊지 않고,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은 외국인도 다르지 않았다. 홍콩에서 온 오기광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시작점이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며 “한국의 안전 의식은 변화하고 있지만 국가가 변화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가 좋아하는 대한민국에 이런 거대한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기억식은 4·16연대 활동가들이 ‘시민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며 마무리됐다. 박현민 4·16연대 활동가는 “진실과 책임, 생명 존중 안전 사회를 향한 재난 참사 피해자와 시민의 연대를 ‘재난의 정치화’로 낙인 찍고, 혐오 정치의 사냥감으로 내던지는 것에 함께 싸워달라”고 시민들에 호소했다. 이어 오정석 목사도 “세월호 참사 이전의 피해자들, 이태원·오송 참사 등 세월호 참사 이후의 피해자들, 시민재해에서 산업재해에 이르는 모든 피해자의 손을 잡아주시고,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는 일에 함께해달라”고 외쳤다. 활동가들의 호소에 화답하듯, 행사가 끝나고도 기억공간은 헌화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볐다.

김채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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