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이' 민희진 기자회견에 기자들 위기감 느낀 이유[이승환의 노캡]

민희진 기자회견, 전략적이었을까 즉흥적이었을까전통매체서 유튜브로 주도권 넘어가는 시대 상징[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맞다이' 민희진 기자회견에 기자들 위기감 느낀 이유[이승환의 노캡]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에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4.4.25/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약 2시간 20분의 ‘민희진 기자회견’을 시작부터 끝까지 본 사람은 확인했을 것이다. 여론이 극적으로 반전되는 과정을 말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25일 회견장에 입장했을 때만 해도 여론은 악화할 대로 악화한 상태였다. 그는 걸그룹 뉴진스를 키운 ‘K팝의 대모’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후줄근한 차림을 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동정심을 유발하려 한다” “(경영권 찬탈이라는) 본질을 흐리려 한다”는 비판론이 들끓었다.

◇”오늘 찢었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생중계한 유튜브 채팅창 분위기는 드라마틱하게 변해갔다. “민 대표가 오늘 찢었다(회견 무대 장악했다)” “국힙 원탑(국내 최고의 힙합 같다)” “직장인의 심금을 울렸다” “오늘부터 팬 하겠다”는 긍정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채팅창을 주도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도어는 걸그룹 뉴진스 소속사이자 국내 1위 가요기획사 하이브 산하 레이블이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어도어 경영권 찬탈 의혹을 제기하며 그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회견을 직접 보고 민 대표의 ‘팬’이 된 사람조차도 그가 법 위반 의혹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함을 알 것이다.

하지만 울분과 분노를 쏟아낸 민 대표의 사자후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분명하다. 요컨대 “나는 X같이 일했다” “실적 낸 나를 찍어내려 했다” “(하이브 수뇌부처럼) 내가 술을 X마시냐, 골프를 치냐” “나에게 맞다이(맞상대)로 들어와라” 등 올해의 어록으로 등극한 그의 발언에서 많은 직장인이 민 대표와 자신을 동일시해 울컥하고 통쾌함을 느꼈다. 사실 기자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기존 기자회견의 문법과 형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교과서처럼 중시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 하나가 ‘감정을 뱉지 말고 감성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감정브랜딩’이 아니라 감정은 절제하고 감성으로 소통하는 ‘감성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감성브랜드가 아닌 ‘감정브랜딩’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대중의 마음에 파고들어 마침내 여론전의 주도권을 쥐었다. 천재는 관습에 충실해 판을 이끄는 게 아니라 역발상으로 판을 아예 전복한다는데, 법리적 다툼이 아닌 여론전 결과만 놓고 ‘민 대표가 천재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미디어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현상이었던 것 같다. 유현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인들과 만났는데 주제는 단연 민희진 기자회견이었다”며 “개인적으로 ‘마셜 매클루언’이 그 기자회견을 봤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1980년 12월 작고한 마셜 매클루언은 전공자라면 누구나 아는 미디어학의 거장으로 ‘미디어는 메시지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메시지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는 ‘내용’인데 ‘미디어는 메시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미디어냐에 따라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다르다는 의미다. 같은 메시지라도 신문이나 책으로 접할 때, TV로 접할 때, 유튜브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접할 때 수용자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TV 아닌 유튜브 공략

신문과 TV 등 전통 미디어는 수직적이고 일방향적인 소통을 했다. 과거 독자나 시청자는 신문과 TV를 통해 전해오는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의미다. 이 체계에 변화를 준 것은 인터넷의 등장이다. 독자와 시청자는 전통매체의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온라인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글로 견해와 반응을 직접 제시해서 수평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을 꾀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한 것이 ‘유튜브’다. 정제되고 엄숙한 전통 미디어인 TV보다 유희적이고 거칠지만 속도감 있게 전개돼 실시간 채팅창이나 댓글로 시청자의 반응을 취합해 소통의 장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민 대표 기자회견을 생중계한 유튜브 채팅창에 남긴 한 누리꾼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민희진 대표와 술 마시며 얘기하는 것 같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활자 미디어·TV 매체가 아닌 유튜브 시대에 걸맞은 현장이었다. 유튜브는 원재료를 재가공해 놀이처럼 밈(meme·인터넷 유행어)으로 확산해 거창하게 말해 담론을 형성한다. ‘X저씨’ 같은 우리 일상의 상스러운 표현까지 밈 문화로 수용한다. 민 대표 기자회견은 유튜브 채널마다 최대 수만 명이 생중계로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의 주요 발언과 국면을 패러디한 재가공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 300만 건 이상을 기록하고 1만20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을 정도다.

주목할 것은 어떤 미디어를 선호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전통 미디어에 익숙한 기성세대 중 상당수는 민 대표 기자회견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민주적이고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는 MZ세대 대부분은 열광하고 환호한다. 이는 감성브랜딩와 궁합이 맞는 전통 매체에서 감정브랜드가 통하는 SNS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미디어 시대의 격변기를 상징한다.

민 대표가 이 점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기자회견을 구성했다면 천재이고, 고려 없이 즉흥적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면 스타성이 충만한 제작자라 할 수 있다. 뉴진스는 국내 1위 가요기획사와 ‘맞다이’하는 민 대표가 제작한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하루 아침에 진정성과 실력으로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아이돌로 자리 잡았다. 지난 27일 자정 뉴진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신속 ‘버블 검’ 뮤직비디오는 13시간 만에 조회 수가 540만 회가량에 달했다.

전통 매체에 소속된 기자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흥미롭지만 한편으로 위기감을 느낀다. 세상이 급변해 어느새 저만치 가버린 대중의 취향과 인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고민이 든다. 민 대표가 ‘기자회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를 받는데 기자들이 기존 방식대로 회견 기사를 쓰는 것이 맞는 걸까. 민 대표는 그렇게, 기자들에게 숙제를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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