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대사가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활동이 러시아의 반대로 연장되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고 “부패한 거래를 위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압박 대열에서 더욱 이탈하면서 북핵 해법으로서 제재의 실효성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8일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 여부 안보리 표결에서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무모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커비 보좌관은 “국제사회는 비확산 체제를 단호히 유지해야 하며, 러시아의 잔혹한 침략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패널 활동 중단은 “미국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부과한 중요한 제재를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009년 이래 표결로 1년씩 임기를 연장하며 연 2차례 제재 이행 점검 보고서를 작성해온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이 이날 실패한 것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패널은 표결 8일 전인 지난 20일 러시아 선박이 북한 나진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간 장면을 담은 위성사진 등을 거론하며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계속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러시아가 이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결론짓지는 않았다. 앞서 미국 정부는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쓸 포탄과 미사일을 다량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북한과 합의한 부패한 거래를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결 직후 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도 전문가패널이 “러시아의 노골적 안보리 결의 위반”을 보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비난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주유엔 대사들도 “러시아는 북한이 넘겨준 탄도미사일을 올 초에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했다”는 등의 비판을 내놨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전문가패널 활동 중단은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시시티브이(CCTV)를 파손한 것”이라고 했다.
안보리 주변에서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제재 이행 감시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러시아의 제재 준수 의지가 사라졌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6년 북한의 최초 핵실험 뒤 첫 안보리 제재 결의가 나온 이후 2017년까지 추가 제재에도 찬성했다. 그러나 2022년 이래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으로 결의를 집중적으로 위반하는데도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며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중·러는 추가 제재는 물론 안보리의 규탄 성명 발표도 막고 있다. 러시아는 전문가패널이 1년씩 임기를 연장하니까 대북 제재도 1년 단위로 검토해 효력 연장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중국이 이번에 반대표는 아니지만 기권표를 던진 것도 제재 이완 분위기에 일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 실패는 미국·영국·프랑스와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방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에 핵무기 포기를 함께 종용하던 중·러의 태도 변화를 더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중·러가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격화하자 북핵을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자산’으로 여긴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경제 관계 등 때문에 미국과 노골적으로 맞서는 것은 피하는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제재 탈출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광범위한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북한과는 동병상련 처지이기도 하다. 최근 대선을 치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답방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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