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역겨운 출근룩’. 단정하지 않을 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더우인
“사흘 동안 감지 않아 기름진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묶고, 잠옷 위에 엄마의 솜 점퍼 걸치면 당신의 출근 룩(look·복장) 완성!”
중국의 20대 우모씨는 이달 초부터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인에 ‘역겨운 출근 룩’ 소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역겨운 출근 룩이란 회사에 갈 때 단정한 옷차림 대신 지저분하고 촌스러운 모습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씨는 ‘세수만이 당신이 회사에 갈 때 차려야 할 유일한 예의’ ‘맘에 안 드는 옷은 버리지 말고 회사 갈 때 입자’ 등의 ‘팁’을 전수하고 있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역겨운 출근 룩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의 장기 경제 침체 속에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지친 젊은 세대가 회사에서 외모 관리를 포기하며 불만 표출에 나선 것이다. 무위(無爲)로 국가와 사회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탕핑(躺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운동이 회사까지 침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CNN 등 서방 매체들도 중국에서 ‘토 나오는 복장’으로 출근하는 문화가 확산하는 점에 주목하며 연일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열풍의 시작은 지난 2월 더우인에 올라온 한 젊은 여성의 사연이다. 그는 회색 체크무늬 바지와 펑퍼짐한 갈색 원피스, 갈색 부츠, 빨간색 장갑, 얼굴 전체를 감싼 마스크 차림으로 영상에 나와 “상사가 내 모습을 보고 ‘역겹다. 회사 이미지를 위해 옷차림에 신경 쓰라’고 핀잔을 줬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중국 청년들을 중심으로 140만 회 이상 공유됐고 ‘좋아요’ 75만 개에 댓글 14만 개가 달렸다. 상당수의 반응은 “회사가 해주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바라는 것만 많다”였다.
이후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역겨운 출근 룩이 가장 주목받는 콘텐츠가 됐다. 청년들은 앞다퉈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기괴한 출근 룩을 인증하기 시작했다. 형광 패딩 점퍼, 오리가 그려진 잠옷, 원색 양말 등 ‘단정함’과 거리가 먼 복장일수록 우수한 출근 룩으로 칭송받았다. 일부러 ‘거지’ 복장을 흉내 내거나, 이른바 ‘몸뻬’와 같은 펑퍼짐한 여성용 바지를 입은 모습도 있다.
그래픽=김하경
역겨운 출근 룩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청년들이 낮은 급여와 적은 기회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컨설팅 업체 마이커스에 따르면 중국 대학 졸업자의 평균 첫해 월급은 5833위안(약 110만원)이다. 베이징 외곽의 허름한 아파트 월세가 6000위안이 넘는데 그보다 못한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 첫해 월급 1만위안(약 190만원)의 벽을 넘는 비율은 전체의 6.1%에 불과하다. 베이징대·칭화대 등 명문대를 졸업해도 과거와 같이 기업들이 모셔가는 경우가 드물다.
상하이의 IT 개발자 톈씨는 “그 누구도 이렇게 적은 돈과 낮은 복지 혜택을 받으며 내가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없다”면서 “그걸 알기 때문에 옷차림이나 상사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베이징의 외국계 기업 직장인은 “(베이징 외곽인) 퉁저우에서 궈마오까지 출근한다. 출근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옷차림을 어떻게 신경 쓰느냐”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청년들이 재택근무 등에 익숙해지며 출근 문화가 급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프리랜서 형태 노동, 소도시 취업, 복권 구매 등을 선호하는 경향도 관찰되고 있다. 많은 이가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 연금 납부를 중지하거나 해지한다. 대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자신이 성장한 소도시로 돌아가 일자리를 찾는 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청년들이 경제난 속에서 복권을 탈출구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직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청년이 많지만, 한편에선 구직에 실패한 청년들이 신음하고 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6월 21.3%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7월부터 11월까지는 청년 실업률 발표가 잠정 중단됐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대학 재학생 등을 대상에서 제외한 새로운 청년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장단단 베이징대 교수 연구팀은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컨라우족(부모 갉아먹는 청년)’을 합치면 실제 청년 실업률은 46.5%(지난해 3월 기준)라는 추계를 내놨다.
☞탕핑 운동
2021년부터 급속히 확산한 중국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소극적 저항 운동. 취업, 승진, 내 집 마련 등 기성세대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겠다는 태도에 기반하고 있다. 탕핑(身尙平)은 ‘드러눕다’라는 뜻이다. ‘열심히 일해도 집값조차 감당하기 힘드니 쓸데없이 노력하지 않겠다’는 중국 청년들의 자조가 담겨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탕핑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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