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경영권 탈취 의혹을 받고 있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강남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올해 초 부진을 딛고 2분기 주가 반등만을 꿈꾸던 하이브 주주들에게 예상치 못한 날벼락이 닥쳤습니다.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인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ADOR)의 민희진 대표 간에 갈등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입니다. 양측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습니다. 집안 싸움에 애꿎은 주주들만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이브-민희진 공개다툼 이후 12% 주가 하락
시총 1조2000억원 증발
엔터사의 자산은 아티스트, 곧 ‘인적자본’입니다. 엔터주의 주가는 이 인적자본에서 발생하는 리스크에 휘둘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속 연예인의 열애설이 보도되거나 마약 흡입과 같은 범죄 사건 등이 발생하면 주가가 크게 폭락하는 것이죠.
이번에 하이브에 발생한 리스크는 기존 유형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듀서에 관한 이슈로 주가가 급락한 것이죠.
시작은 지난 22일이었습니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포함한 어도어 경영진이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을 파악해 감사에 착수하고 민 대표에겐 사임을 요구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어도어의 지분 80%는 하이브, 민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이 2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이브는 뉴진스라는 인기 아이돌을 데리고 있는 어도어가 하이브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한 것이죠. 반대로 어도어는 경영권 탈취 시도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하이브 소속 걸그룹인 아일릿(ILLIT)이 뉴진스를 카피해 뉴진스의 성과를 침해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 19일 23만500원이었던 하이브의 주가는 26일 20만15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시가총액으로 하면 5일간 1조2000억원 가량이 증발한 것입니다. 민희진 대표의 반박 기자회견 다음날인 26일에는 장중 20만원도 무너졌다가 가까스로 20만1500원으로 방어했습니다. 뉴진스를 주도적으로 기획한 민 대표와 최악의 경우 하이브의 핵심 지식재산(IP) 중 하나인 뉴진스까지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입니다.
오를 줄만 알았던 하이브 주가
멀티레이블 전략 구멍나나
그룹 뉴진스가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튜브 시어터에서 열린 ‘2024 빌보드 위민 인 뮤직 어워즈’에 참석하고 있다. 어도어 제공
주주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체제에서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습니다. 당장 2분기 실적 개선으로 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컸죠.
통상 1분기는 시상식 등 연말 일정을 소화한 후 아티스트가 휴식기에 돌입해 엔터업계의 실적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에 ‘큰 손’인 중국에서 앨범 공동구매가 줄어들면서 르세라핌 등 소속 아티스트의 앨범 판매량도 전작 대비 부진하기도 했습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3을 웃돌아 밸류업 프로그램의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2분기부터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1월 데뷔한 보이그룹 투어스(TWS)와 3월 데뷔한 걸그룹 아일릿이 흥행하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뉴진스 등 주력 아티스트가 컴백을 앞두고 있어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습니다. 장기적으론 올해 6월부터 진을 시작으로 BTS 멤버들이 순차 전역을 앞둬 내년엔 BTS 완전체 활동이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주가 상승 요소로 작용해왔습니다.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의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스튜디오 앞에 긴 줄이 늘어서있다. 김경민 기자
주주들의 하이브를 향한 믿음도 컸습니다. 상장 초반만 해도 BTS 의존도가 높았던 하이브는 다수의 독립된 레이블을 구축해 BTS가 군입대로 이탈한 후에도 실적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각 레이블마다 부여된 고유권한으로 다양한 색채의 아티스트를 선보일 수 있어 회사 입장에선 포트폴리오를 넓힐 기회가 됐습니다. 다양화된 포트폴리오만큼 수익도 비례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었죠. 실제로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은 빅히트뮤직엔 BTS와 TXT, 플레디스는 세븐틴 및 투어스, 빌리프랩는 아일릿 등 레이블 별로 산재해있습니다. 뉴진스가 소속된 어도어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왔죠.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갈등은 주가 상승 기대감에도, 하이브의 성장 모델에도 찬물을 끼얹은 것이죠. 지인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민 대표가 IP 콘텐츠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멀티레이블의 추가 확장성과 존재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분간은 주가 변동성 클 듯
개인은 사고, 기관·외국인 팔아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성동훈 기자
그렇다면 앞으로 하이브의 주가는 어떻게 될까요?
당장 매수주체별 행태를 보면, 확연히 다릅니다. 22~26일 사이 기관은 1545억원, 외국인투자자는 360억원 순매도한 반면, 개인들은 707억원 어치를 사들였습니다. 단기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외국인과 기관은 팔아치운 것이고 개인들은 저점 매수라는 생각으로 사들인 거죠.
일단 당분간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주가는 변동성이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의견입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론 이번 여파가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데다 뉴진스의 이탈 가능성도 작아 주가 흐름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2023년 하이브에서 어도어가 차지하는 매출액은 5%(1103억원), 영업이익은 11%(335억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어도어의 이탈은 악재지만, 장기적으로 회사가 휘청일 정도의 충격은 아니라는 것이죠. 박수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브 아티스트 라인업 중 뉴진스가 배제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 24년 매출액 및 영업이익 내 영향은 10%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어도어 지분의 80%를 가진 하이브가 뉴진스라는 인기 IP를 포기할 것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변수는 남아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손상됐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아일릿은 뉴진스 ‘베끼기’ 논란에 휩싸여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합니다. 민 대표가 없는 뉴진스 역시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찍힙니다.
집안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주주 입장에선 불확실성이라는 혹만 추가된 셈입니다.
김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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