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독주로 본회의 직행한 ‘민주유공자 예우법·가맹점 단체교섭법’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심사를 ‘패싱’하고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법안들을 또 다시 국회 본회의로 곧장 넘겼다. 여당은 “의회주의를 파괴했다”고 비판했고 야당은 “희대의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여당 위원들이 법안 처리에 반발하며 불참한 가운데 민주화 운동의 사망자·부상자·가족·유족을 예우하는 내용이 담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하 민주유공자법)과 가맹점주들의 단체 협상권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가맹사업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개정안'(이하 가맹점 단체교섭법)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5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두 법안이 표결에 부쳐진다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권 주도로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법안은 지난해 12월 정무위를 통과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중이었다. 두 법안은 지난해 12월 정무위 전체회의 통과 당시에도 여당 위원들의 불참 속 법사위로 직행해 논란이 됐다.
가맹점 단체교섭법이 본회의로 바로 보내지자 국민의힘은 물론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내용과 절차적 측면 모두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여야 토론과 논의를 통해 법안에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데도 정무위는 물론 법사위에서도 숙의 없이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가맹점 단체교섭법은 가맹점주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가맹점 사업자단체 등록제 도입, 가맹점 사업자단체의 본사 협상권, 가맹본부의 가맹점 사업자단체 협의요청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이 법안에 대해 ‘가맹점 갑질 방지법’이라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과 프랜차이즈 업계는 이 법안이 가맹점주에게 사실상 노동조합 권한을 부여하고 사적계약을 바탕으로 형성된 사업자 간 관계를 노사관계처럼 여기도록 해 업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한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만약 가맹점 사업자단체 등록제 기준을 사업자 수의 30%로 설정한다면 한 회사 내에 3개의 복수 사업자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상 복수 노조를 허용하는 셈”이라며 “노동법에는 복수 노조를 허용해도 임금 협상은 대표 단체 한 곳만 정하고 협상 일자도 구체화한 규정이 있는데 이번 가맹사업법 개정안에는 그런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본사가 복수의 사업자단체와 1년 내내 다른 내용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밖에 고의적으로 본사의 경영 방해를 위해 임금 협상 등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고 공정거래위원회나 본사가 협상 단체의 명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개정안의 맹점으로 지적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로 직행한 민주유공자법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을 제외한 다른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 또는 부상을 당하거나 유죄 판결 등 피해를 받은 이들을 유공자로 예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보훈부의 심사를 거쳐 유공자 본인과 가족도 보훈·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의힘 위원들은 이 법안에 대해 민주당 주류인 운동권 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법이자 ‘운동권 셀프 특혜’라며 법안 처리에 줄곧 반대해왔다.
野 독주로 본회의 직행한 ‘민주유공자 예우법·가맹점 단체교섭법’
여당 간사인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유공자 심사 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고 유공자의 공적과 명단도 볼 수 없는 상태”라며 “이미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1169억원의 보상이 이뤄진 이들을 또다시 유공자로 예우하자는 것은 기존 독립유공자나 국가유공자 뿐만 아니라 그 분들의 유족들을 우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야당 간사인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민주유공자법은 20년 넘게 계속 논의돼 온 사항”이라며 “유가족에 대한 특혜 논란이 있었던 교육, 취업, 주택 공급 등의 지원 항목도 대폭 삭제했고 고령이 된 유가족의 의료와 양로 지원만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강 의원은 의사진행발언 이후 회의장을 퇴장했다. 두 법안을 본회의로 바로 보내기 위한 표결은 야당 위원들만 남은 채 진행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지 60일 이상 지나도록 특별한 이유 없이 심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에 부의를 요청할 수 있다.
정무위 소속 위원은 백혜련 정무위원장을 비롯해 총 24명이다. 따라서 본회의 부의를 위한 의결 정족수는 15명이다.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에는 민주당 소속 백 위원장 외 민주당 소속의 홍성국·강훈식·김한규·민병덕·박성준·박재호·오기형·이용우·최종윤·김성주 의원과 개혁신당 소속 양정숙·조국혁신당 소속 황운하·새로운미래 소속 김종민·진보당 소속 강성희 의원 등 총 15명이 참석해 표결해 이뤄졌다. 이날 15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거대 야당이 의석 수를 무기삼아 정무위, 법사위에서 심사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본회의로 직회부한 데 대해 강민국 의원은 무력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강 의원은 이날 표결 직후 정무위 소속 여당 위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관계자간의 대립으로 숙의가 필요한 법안을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것은 대화와 타협, 토론과 합의를 중시하는 의회주의 원칙을 흔드는 일”이라며 “법안을 직회부하면 그것에 대해 저희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정무위 소속 야당 위원들은 표결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국민의 회초리를 겸허하게 받겠다’고 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더욱 낮은 자세로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다. 이 말들에 조금의 진정성이라도 있다면 남은 21대 국회 임기내에 ‘민주유공자법’과 ‘가맹사업법’을 본회의에서 의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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