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대서양 제해권’ 내놓으라는 中

美·中, 군기지 건설놓고 가봉·적도기니·지부티서 외교전

美, 대서양 제해권 핵심 가봉 中 군사기지 건설 ‘무산’시켜

두 나라, 적도기니 잡기 위해 경제·군사협력 등 선물 공세

‘아프리카의 뿔’ 지부티선 우위 확보 위해 ‘물밑 지원’ 치열

美에 ‘대서양 제해권’ 내놓으라는 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4월 19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방문한 알리 봉고 온딤바 당시 가봉 대통령을 맞아 함께 회담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4월 19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방문한 알리 봉고 온딤바 당시 가봉 대통령을 맞아 함께 회담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불꽃튀는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인민해방군의 대서양 진출 위해 해외 군사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중국 군함이 수시로 드나드는 것을 결코 두고 볼 수 없다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대서양 제해권(制海權)을 둘러싸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중 외교전쟁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0일 보도했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약 80개국 750곳에 해외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반면 중국은 1곳을 운영하고 있다고 미 싱크탱크 퀸시연구소(Quincy Institute)는 전했다.

미·중이 가장 공들이는 나라는 아프리카 서부 가봉이다. WSJ에 따르면 알리 봉고 온딤바 가봉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존 파이너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을 약속했다”고 털어놨다. 봉고 대통령은 그해 4월 베이징을 국빈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가봉은 인구 250만명, 면적은 한반도의 1.2배에 달하며 ‘아프리카의 쿠웨이트’로 불리는 산유국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이 가봉에 해군기지를 건설해 운용할 경우 군함의 정박과 정비까지 가능해지는 까닭에, 대서양 제해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만큼 미국으로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를 막아야 할 처지였다.

그러던 차에 이를 저지할 기회가 왔다. 지난해 8월 말 가봉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브리스 올리귀 응게마 공화국 가봉 수비대 사령관이 사촌 형인 봉고 대통령을 반역죄로 체포해 가택연금한 뒤 9월 4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한 군기지 건설 약속을 철회하도록 가봉 새 대통령과 물밑 교섭을 벌였다. 파이너 부보좌관은 9월 유엔 총회기간 뉴욕에서 응게마 대통령을 만나 설득했고, 국무부 고위 관리들도 가봉을 방문해 공략에 나섰다. 가봉은 결국 “봉고 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해군기지 건설을 약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두약속이었을뿐 서류를 남기지 않았다”며 미국 요구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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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8월 1일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인민해방군 해군부사령관 톈중(田中) 중장과 지부티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해군기지 가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 중국 당대해군(當代海軍) 홈페이지 캡처

지난 2017년 8월 1일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인민해방군 해군부사령관 톈중(田中) 중장과 지부티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해군기지 가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 중국 당대해군(當代海軍) 홈페이지 캡처

미국은 ‘선물’로 가봉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올해 서방 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의 합동 해상훈련의 개최지로 가봉을 선정했다. 미 정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쿠데타가 일어난 국가에 대한 지원금지가 법률로 규정돼 있을 정도로 미국은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음벰바 디졸렐레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이 사안은 국가안보적으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은 가봉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가봉과 카메룬 사이에 있는 적도기니에 대해서도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이 미 동부 해안과 마주 보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적도기니에 각종 인프라 건설을 제안하는 등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를 안기며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1968년 독립한 적도기니는 인구 170만명, 면적이 한반도의 8분의 1에 불과한 아프리카에서 작은 나라에 속한다.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이 1979년부터 40년 넘게 장기 집권하며 철권통치를 펴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적도기니의 제1의 도시이자 기니만의 주요 항만도시인 바타에 큰 배들이 드나들 수 있는 상업용 심수항을 건설했다. 이어 바타와 중앙아프리카 내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건설했으며 적도기니 경찰 훈련 및 무장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지역도 바로 바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온, 시 주석이 야심치게 추진하는 육상·해상 새로운 실크로드 ‘일대일로’(一帶一路·Belt and Road Initiative) 프로젝트가 군사전략으로 확장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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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2017년 아프리카 지부티에 건설된 해군기지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2017년 아프리카 지부티에 건설된 해군기지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은 다급한 나머지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음바소고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2021년 10월 파이너 부보좌관 등 고위 당국자들을 급파했다. 이들이 적도기니를 찾은 목적 가운데 하나가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 시도를 차단하는 데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적도기니가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 끼어드는 것은 근시안적인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두 나라의 의도를 간파한 적도기니는 ‘러브콜’을 받는 상황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2021년 3월 바타 인근 육군기지에서 대규모 군수품 폭발 사고로 100여명이 사망하자 원조를 제공했으며, 그해 여름엔 기니만에서 미 해군 주도로 열린 훈련에 적도기니군을 합류시키기기도 했다.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에선 군사기지를 확보한 미·중 두 나라가 우위 선점을 위해 치열한 각축을 펼치고 있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이곳에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견제를 뚫고 2017년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세우면서 미국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졌다. 미군 아프리카사령부의 바로 턱밑에 중국 군기지가 생긴 것이다.

소말리아와 에레트리아, 에티오피아에 둘러싸인 지부티는 인구 115만명, 면적은 한반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홍해와 아덴만이 만나는 길목인 ‘아프리카의 뿔’에 자리한 덕분에 아시아-중동-아프리카를 잇는 요충지이다. 아덴만과 홍해에 모두 접해 있는 만큼 물류 허브로도 적합하다.

지부티의 르모니에 미군 기지와 중국군 해군기지는 불과 15㎞쯤 떨어져 있다. 지난 2017년 토머스 월드하우저 아프리카사령관은 미 의회에 출석해 “중대한 안보상의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점을 지부티 정부에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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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중국으로서는 지부티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에너지루트 확보전략인 ‘진주 목걸이’ 구상에 필수적인 곳이다. 이런 만큼 지부티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지나는 지역에 건설된 중국의 군기지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이 기항 가능한 규모로 평가된다. 중국군은 지부티 기지가 소말리아 해적 단속, 유엔 평화유지활동 협력, 인도적 지원과 재외국민 보호 등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중국군의 해외활동을 지원하는 전초기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폴 난툴랴 미국 아프리카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중국이 지부티 기지에 2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며 “중국은 항공모함을 수용할 수 있는 부두까지 완공해 서태평양 너머로 전력을 파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미국 역시 일찌감치 지부티에 물심양면(?) 지원해왔다. 미국은 경제원조를 비롯해 해마다 7000만 달러(약 735억원)를 지부티에 투자하고 있다. 르모니에 미군 기지에는 특수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헬리콥터와 전투기 등 중무기들이 배치돼 있다. 특히 예멘과 소말리아에서 드론(무인기) 작전을 펼치는 중추적인 기지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적 중요성 덕에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대통령이 지난해 르모니에 기지의 임대료를 2배나 올려도 미국은 ‘군말없이’ 수용했다. 프랑스와 일본도 지부티에 테러나 해적행위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군기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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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미국중국 #아프리카 #가봉 #적도기니 #지부티 #인민해방군 #군사기지 #해군기지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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