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고통이 ‘민생’인데...‘의정 갈등’ 미적대는 윤-이 회담

환자 고통이 ‘민생’인데...‘의정 갈등’ 미적대는 윤-이 회담

정부의 의대 증원안에 반발하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돼 사직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2024.4.25 연합뉴스

의료 공백 사태가 전공의 집단행동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휴직 등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정 갈등 때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영수 회담으로 사태의 변곡점을 만들었듯,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만간 벌일 회담을 발판으로 사태를 해결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대통령실과 민주당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담 테이블에 오를 의제에 의-정 갈등과 의료개혁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회담에서 이들 사안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할 수는 있지만, 이는 정부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입법 사항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회와 논의해야 하지만, 의대 정원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영역”이라며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등 입법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야당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은 상황이다 보니 (윤 대통령이) 같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해보자는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씩 후퇴했지만, 의료계 변화는 이끌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3월24일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에 대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주문하며 강경한 태도에서 물러났다. 또 정부는 지난 19일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2025학년도에 한해 증원분을 조정했다. 그러나 한발씩 물러날 때마다 의료계에선 온건한 목소리는 줄어들고 ‘원점 재검토’라는 강경한 목소리만 힘을 얻었다. 더욱이 4·10 총선 뒤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하는 등 의료계와 대화에 나설 책임자가 사실상 사라졌다. 윤 대통령도 총선 뒤인 16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의료 개혁을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겨 듣겠다”고만 밝혔다.

환자 고통이 ‘민생’인데...‘의정 갈등’ 미적대는 윤-이 회담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민주당도 사태 해결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총선 전후 의료계와 시민사회, 여·야·정이 참여하는 ‘보건의료 개혁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제안한 바 있으나, 여권의 반응이 없자 더는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의-정 갈등을 의제로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유보적이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의대 증원 문제는 중요하긴 하나 이해당사자인 의료계를 배제하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둘이 만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회담에 올리는 건 고민스러운 문제”라고 말했다.

윤-이 회담에서 의-정 갈등이 소극적으로 다뤄질 전망 속에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는 의료계를 설득하는 데 힘에 부치는 분위기다. 이날 조규홍 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필수의료 정책을 논의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특위)가 출범했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은 참여를 거절했다. 앞서 복지부는 특위와 별도로 의대 교수·의협 등에 증원 규모 등을 논의할 의-정 협의체 구성도 제안했지만 이 역시 거절당했다. 20여개 의대 교수들의 모임인 전국 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3일 회의를 열어 정부와의 대화 추진 여부 등을 논의했지만, 대화체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의대 증원 초반부터 대통령·국무총리 등이 ‘연 2천명 증원’에 강한 의지를 보인 상황에서 ‘윗선’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복지부가 의료계에 대화를 위한 적극적인 협상 카드를 제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강 대 강’ 대치의 출구를 여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 의약분업 분쟁 당시에도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만나 전환점을 만들기도 했다. 의사 집단행동 5일째인 그해 6월 두 사람은 ‘영수 회담’을 하고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회담 결과에 의사들은 투표 끝에 파업을 철회했다. 비록 약사법 개정안 세부안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다시 불거졌지만, 정치권이 사태를 풀 실마리는 제공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는 “정부·여당이 총선 패배 이후 궁지에 몰렸다고 본 의협에서는 강경론이 더욱 득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민심은 여야에 협치를 주문한 것”이라며 “(의-정 갈등 해결이)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회담의 첫 의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정부가 그간 강경하게 의대 증원을 추진해온 만큼 증원 규모를 조정하겠다고 먼저 나서기 어려워졌다”며 “정치권이 의-정 사이의 절충점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email protected] 엄지원 기자 [email protected] 장나래 기자 [email protected] 김윤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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