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인 부산대 명예교수 작심비판
소방관 죽음 각오하고 국민보호
의사들 희한한 논리로 진료거부
정부 자율조정 양보하자 더 강경
소아투석병원 교수 사직 예고에
중증환아 부모들은 불안감 커져
“의대교수 집단사직은 쇼에 불과… 면허 못 버려”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자율 조정’으로 한발 물러서자 의사들이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더 강경하게 돌변한 가운데 의대 교수 사회에서 실효성 없는 집단 사직을 멈춰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면허를 반납하는 등 의사를 그만둘 의향이 없는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앞세워 정부와 환자를 압박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올바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주 1회 휴진하는 방침을 논의한 데 이어 국내 유일한 소아 전용 투석실을 갖춘 이 병원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이 오는 8월 31일 사직하겠다고 공지해 중증 환아와 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정영인(사진)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는 2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대 교수의 집단 사직은 진정성 없는 쇼에 불과하다”며 “이제라도 쇼를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 교수는 4·6대 국립부곡병원장을 역임했다. 정 교수는 “이참에 개원가로 떠나고 싶은 봉직의들도 있겠지만, 의대 교수들 성향상 많은 노력을 들여 힘들게 취득한 의사직과 교수직을 쉽게 버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 사직하겠다는 건 교육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소방관은 자신의 죽음까지 각오하고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화재 현장에 뛰어든다”며 “반면 의사들은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진료 현장을 떠난다는 희한한 논리로 진료 거부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 의료를 책임질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교육 현장 이탈을 방조하고 그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대 교수들의 겁박은 교육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의사를 할 생각이 있다면 병원과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사 사회가 조금 더 대승적이고 전향적인 방향에서 의대 증원을 숙고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교대 정원을 늘린다고 교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냐”면서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면 의대 교수들은 전문가로서 의대 증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사는 다른 직업과 달리 생명을 직접 다루다 보니 대체재가 없다”며 “의대 증원이 의사의 존재 가치를 부정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 교수가 제시한 의대 증원 당위성은 필수 의료 위기를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다. 우선 의사 1인당 진료 환자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을 꼽았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 외래진료 횟수(연간 15.7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9회)의 약 3배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의과학과 바이오산업을 위해서도 의사들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의사들 대다수가 임상 분야에 종사해 전문성을 요하는 보건정책 분야 의사들이 드물다”며 “기초의학 연구와 제약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바이오산업에서 의료 인력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의사의 자질로는 환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품성을 꼽았다. 정 교수는 “좋은 의사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내에서 환자와 공감하고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의사들의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은 유별나다”며 “겸손함은 능력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부채 의식과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권도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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