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군사비 14년 만에 최대폭 증가…1인당 42만원 부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근처에서 우크라이나군 탱크가 포탄을 쏘고 있다. 바흐무트/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중국-대만 갈등 고조 등의 여파로 전세계의 지난해 군사비 지출이 14년 만에 가장 빠르게 늘어, 사상 최고 규모인 2조4430억달러(약 3365조원)에 달했다는 집계 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2일(현지시각) 발표한 ‘2023년 세계 군사비 지출 추세’ 보고서에서 세계 군사비 지출이 9년 연속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22년 대비 실질 지출 증가율은 6.8%로 2009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세계의 군사비 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2.2%에서 2.3%로 늘었다. 세계 인구 1인당 군사비 부담액은 1990년 이후 최고인 306달러(약 42만3천원)에 달했다.
보고서는 아메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세계 5대 권역의 군사비 지출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모두 늘었다며 “특히 유럽, 중동, 아시아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2022년 2월말부터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군비 경쟁을 촉발했고, 지난해 10월 시작된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군비 확충을 불렀다. 중국과 대만의 갈등 고조는 일본 등 주변국들까지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게 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중남미에서는 각국이 무장 단체 진압에 군대를 적극 동원하면서 군사비 지출이 늘었다.
이 연구소의 군비 지출 및 무기 생산 프로그램 담당 난 티안 선임연구원은 “전례 없는 군비 지출 증가는 전세계적인 평화와 안보 상황 악화에 대한 직접 대응”이라며 “각국이 군사력 강화를 우선시하고 있지만, (이런) 행동이 반작용을 부르는 소용돌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2년 이상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군사비 지출 세계 3위)와 우크라이나(2022년 11위에서 8위로 상승)의 지난해 지출액은 한해 전보다 각각 24%, 51% 늘어 10대 군사비 지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러시아의 지난해 지출액은 1090억달러로 추산됐고, 우크라이나의 군사비는 러시아의 59%인 648억달러였다. 보고서는 “미국 등 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액 350억달러를 포함하면 지난해 우크라이나가 쓴 총 군사비는 러시아의 91%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한해 전보다 2.3% 늘면서 세계 군사비 지출액의 37.5%인 9160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도 한해 전보다 6.0% 늘어난 2960억달러를 군사비에 쓴 것으로 추산됐다. 두 나라의 군사비 지출은 세계 전체 지출의 49.6%에 달하는 규모다.
군사비 지출 10위를 기록한 일본과 7위인 독일도 각각 11%와 9.0%의 높은 지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11위를 기록한 한국은 지난해 지출을 1.1% 늘려 총 479억달러를 군사비로 썼다.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의 안보 전망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지난해 쓴 군사비가 나토 전체의 28%를 차지했으며 이는 10년 만에 가장 높은 비중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29년 연속 군사비 지출을 늘리면서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의 군비 경쟁을 촉발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 몇년 동안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지난해 군사비 지출이 2022년보다 줄어든 나라로는 이탈리아(-5.9%), 오스트레일리아(-1.5%), 멕시코(-1.5%), 인도네시아(-7.4%), 파키스탄(-13%), 쿠웨이트(-8.8%), 그리스(-17%), 타이(-6.5%), 루마니아(-4.7%)가 꼽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