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하차 통보와 무례한 방송국 놈들을 위한 구차한 변명[TV와치]
김신영 하차 통보와 무례한 방송국 놈들을 위한 구차한 변명[TV와치]
10년 전쯤 KBS 2TV 주부 대상 아침 프로에 매주 한 번씩 출연했다. 열애설 등 연예계 소식을 3건 정도 다루는 코너. 작가가 써준 대본을 VCR 화면을 보면서 읽기만 하면 됐고 15분 남짓 출연에 20만 원을 받았으니 꽤 쏠쏠한 꿀 알바였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 작가가 “기자님, 오늘 생방 끝나고 PD님 좀 보고 가세요”라고 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잘렸구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 PD는 “그동안 고생했어요”라며 머쓱하게 악수를 권했고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고 했지만 둘 다 밥은 먹지 않았다.
얼마 후 알고 지내던 타사 후배 여기자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능숙하게 방송하는 걸 보고 속이 끓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방송국 놈들은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하고 사람을 멋대로 갈아치우는구나, 참 정 없다 싶었다. 몇 년 후 나를 자른 PD를 상갓집에서 우연히 만나 ‘그때 좀 서운했다’라고 털어놓자 돌아온 그의 말.
“위에서 자르라는데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그러게 기자님이 그때 좀 잘하지 그랬어요?” 반박할 수 없었던 건 그의 말이 모두 맞기 때문이다. 세금 3.3% 떼는 용역 제공자에 불과했는데 정작 나만 파리 목숨인 걸 몰랐던 거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윗선이나 모니터 과정에서 ‘저 사람 좀 별로지 않냐’라는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그럼 이 대목에서 ‘자를 때 자르더라도 서로 예의를 좀 갖추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 이 역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고인이 된 MC 허참도 25년간 진행한 ‘가족오락관’ 폐지를 마지막 녹화 일주일 앞두고 통보받았다. 과연 방송국 PD의 인성이 나빠서일까.
2009년 그가 자주 가던 고깃집 새벽집에서 인터뷰하며 물었다. “선생님, 서운하지 않으셨어요?” “에이, 뭐가 서운해? 원래 방송이란 게 그런 거예요. 하차를 너무 일찍 알려주면 나도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정성을 덜 쏟게 돼 있어요. PD들이 그걸 귀신같이 아는 거지. 서로 선수끼리 이해하는 거지.”
방송국이 입사할 때부터 무례한 사람만 가려 뽑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도 함포고복 시절엔 MC나 패널들에게 개편을 훨씬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미리 하차를 귀띔해준다. 서로서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KBS는 배가 침몰하고 있고 구명정은 턱없이 부족하다. 누가 누굴 배려할 여유가 없다. 인사권이라는 칼을 쥐어줬는데 그걸 안 쓰면 직무유기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을의 입장에서 하차 통보를 받으면 매우 억울하지만, 나의 쓸모가 거기까지라고 받아들이고 빨리 짐 싸들고 그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내 가치를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같은 공기를 마셔야 하나? 보통 조직 충성도가 강한 PD일수록 하차 통보를 늦게 한다. 심지어 녹화 당일 ‘선배님, 사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고 말하는 애사심 높은 PD도 있다. 그들은 사람보다 조직에 충성하며 자기 프로그램이 밥줄 이상의 사명감이다.
김신영의 하차도 이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희가 사장도 바뀌었고 물갈이 중인데 그만 나가달라’고 해야지 ‘혹시 나가주실 의향이 있나요?’라고 물을 순 없지 않은가. 예의를 지킨다고 한두 달 전 미리 하차를 알린다면 매주 녹화하며 서로 얼마나 불편하고 뻘쭘하겠나. 김신영은 프로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윗선은 그걸 믿지 못한다. 아니 믿지 않는다.
김신영은 더는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이번 일로 든든한 지지자들이 생겼고, 조만간 더 좋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남희석이 투입되는 ‘전국노래자랑’ 시청률이 하락한다면 김신영 팬들에겐 고소미일 텐데 글쎄 여기서 더 빠질 숫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김신영 잘못 잘랐다’라는 평가가 뒤늦게라도 나온다면 이를 지시한 윗선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