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기 싫던 교재 보게 돼요"…새 학기 '수꾸'에 빠진 학생들

새 학기에 고3이 되는 김희수(17·가명)양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스티커를 ‘공구’(공동구매)하자는 글을 올렸다. 취향대로 스티커를 만들어 EBS 교재인 수능특강(수특)을 꾸미기 위해서다. 김양은 “올해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으로 꾸며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2025학년도 수능특강 표지를 꾸민 사례. 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이나 캐릭터를 활용했다. 독자 제공

2025학년도 수능특강 표지를 꾸민 사례. 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이나 캐릭터를 활용했다. 독자 제공

 

학생들이 각종 꾸미기를 하면서 새 학기 준비에 한창이다. 수험생들의 ‘수꾸’(수능특강 꾸미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EBS는 매년 홈페이지에 수능특강 표지 시안을 공개하고, 투표를 받는다. 결과가 나오면 수험생들이 ‘호불호’를 드러내는 글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들썩인다. 온라인 스토어에서 스티커 등을 제작 판매하는 한 사장(42)은 “지난 2021학년도에 조카가 EBS 캐릭터인 펭수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스티커 제작을 시작했다. 올해 수특 표지가 선정되자마자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수꾸·다꾸’도 공부법…“보기 싫던 책 보게 돼”

 

2024학년도 수능특강을 아이돌 사진과 유명 강사인 윤도영(왼쪽 아래)씨 사진으로 꾸민 모습. 독자 제공

2024학년도 수능특강을 아이돌 사진과 유명 강사인 윤도영(왼쪽 아래)씨 사진으로 꾸민 모습. 독자 제공

 

학생들은 꾸미기가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부산 낙동고 3학년 김민수(17)군은 “고1, 2 때부터 수특을 꾸미고 싶었다”며 “친구들과 찍은 단체 사진으로 표지를 바꿨더니, 펴기 싫던 책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된다”고 했다. 수꾸에는 주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캐릭터를 활용하지만, 최근에는 유명 강사 사진으로 ‘표지 갈이’를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와 이를 SNS에 인증하는 공스타그램(공부+인스타그램)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교실에선 ‘사물함 꾸미기’까지 등장했다. SNS에는 아이돌 응원봉이나 사진으로 사물함 내부를 화려하게 꾸며 놓고, 이를 연달아 열어보는 영상이 화제다. 팬덤 문화가 또래의 놀이 문화로 교실에 들어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에서 #다꾸 를 검색하면 게시물이 약 430만 개 나온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서 #다꾸 를 검색하면 게시물이 약 430만 개 나온다. 인스타그램 캡처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대량 생산 제품을 그대로 쓰지 않고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것은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을 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면서 “동시에 아이돌이나 유명 강사 등에 소속감을 느끼는 팬덤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안정감을 느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 학기를 앞둔 아이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자 꾸미기를 함께 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부천에서 슬라임 카페를 운영하는 유훈규 사장은 “새 학기를 앞두고 필통과 일기장을 꾸미려는 초등학생들이 하루 15~20팀 온다. 아이들은 남과 똑같은 필통보다는 본인 방식대로 꾸민 걸 좋아한다”면서 “부모들이 자녀와 친구들을 함께 데리고 와서 아이들끼리 친해질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한 학생이 직접 꾸민 다이어리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부천 슬라임파티

한 학생이 직접 꾸민 다이어리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부천 슬라임파티

 

 

“건전한 놀이” vs “공부에 방해” 

  학생들의 꾸미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27)는 “예전 학교에선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학생의 개성을 존중한다”며 “교재나 학용품을 예쁘게 꾸미는 건 공부에 대한 관심을 높여줄 수 있다”고 했다. 일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27)도 “학생들이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틱톡이나 릴스(짧은 영상)를 활용하는 것처럼, 공부에 필요한 교재와 학용품도 자기표현의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반면 학원 강사인 김일준(53)씨는 “교과서 표지에서 ‘국어’를 ‘굶어’로 고쳐 쓰는 정도는 ‘기발한 제목 장사’라고 웃어넘겼는데, 시간을 지나치게 투자하는 노동 수준의 꾸미기는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는데 하기가 싫으니까 ‘딴짓’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지원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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