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R&D 예타’ 폐지 지시, 조변석개하는 미래 정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해 과학계와 여론의 반발을 샀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엔 연구개발 예산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눠먹기식’이라고 비난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사상 최대로 올리겠다고 밝힌 데 이어, 재정 투입의 적정성을 따지는 예타마저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달려 있는 연구개발 정책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조변석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성장의 토대인 연구개발 예비타당성조사를 전면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예타 대상 기준을 현행 500억원 이상에서 1천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수준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지시다.
예타는 원래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도로나 철도 등 각종 사업을 대상으로 경제성을 평가하는 제도여서 확실한 성과를 보장하기 어려운 연구개발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지난 1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통해 사업의 당락 자체를 정하기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예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전면 폐지 지시는 기존 개편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할 때도 독단으로 지시하더니, 복원하는 과정에서도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제왕처럼 굴고 있다. 연구개발 예산 대폭 삭감으로 각계의 비판을 받자 이를 만회하려 무리수를 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연구개발 영역은 일회적인 지원보다 안정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한데, 대통령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즉흥성이 과학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연구개발만이 아니라 저출생, 약자 복지, 필수의료 등 장기간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굵직한 과제들이 언급됐는데, 재원 마련 대책은 지출 구조조정밖에 없었다. 지난해에도 예산 불용액이 45조7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집행하지 않은 예산이 많았는데, 올해도 이를 반복하겠다는 것이다. 감세를 남발해서 세수펑크를 자초하면서 건전재정은 지키겠다고 하고, 건전재정을 지키겠다면서 연구개발 예타는 전면 폐지하겠다고 한다. 이 모순이 낳을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