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본가 찾던 새신랑···“약속 있어 다음날 온다더니” [시청역 돌진 사고]

월요일마다 본가 찾던 새신랑···“약속 있어 다음날 온다더니” [시청역 돌진 사고]

역주행 차량이 인도를 덮쳐 9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사흗날인 3일 서울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에 추모 꽃과 물품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시청역 차량 돌진사고’ 희생자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3일 적막 속에 유가족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이따금 흘러나왔다. 이곳엔 사고로 사망한 용역업체 ‘현대C&R’ 직원 세 명의 빈소가 지하 1층에 일렬로 차려졌다. 고인은 모두 30~40대 남성들이었다.

지난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사고로 숨진 김모씨(38)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약품을 관리하는 직원이었다. 지난해 10월 결혼해 아직 신혼인 김씨는 최근 일본으로 4박5일 간 부부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에 손주를 보여드리겠다”고 아버지에게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매주 자신을 찾아오던 아들을 기다리다가 참변 소식을 들었다. 그는 “월요일이면 (퇴근 후) 잠시라도 들러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잘 지내는지 등을 얘기했다”며 “집에 갈 땐 전철역까지 내가 태워줬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날 부모를 찾는 대신 시청역 근처로 갔다. 아버지는 “이번 월요일엔 다른 약속이 있어 화요일에 온다고 했는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부모에게 취미와 근황을 수시로 전하는 착실한 아들이었다. 김씨 아버지는 “용산에서 하는 게임 전시회에 가서 액세서리 같은 걸 샀다고 하더라”며 “그러고 시청에서 밥을 먹고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2호선을 타는 곳에서, 그걸 건너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 게임, 취미까지 세세히 기억했다. 그는 “아들이 갈비찜을 좋아해 고기를 다 먹은 뒤엔 꼭 국물에 밥까지 먹었다. 군대 면회 가면 갈비찜은 꼭 챙겨갔다”며 눈물을 훔쳤다. 아들이 취미로 모은 신발도 아직 집에 남아있다고 했다. 김씨는 수십 켤레 모은 신발을 결혼 준비를 히며 팔았는데, 당시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거 팔면 미국 비행깃값이에요”라고 했다고 한다.

김씨의 빈소 옆 직장 동료 A씨(35)의 빈소에서도 통곡이 흘렀다. 전날 A씨의 시신이 도착하자 어머니는 빈소에 쓰러져 울며 고인의 이름을 불렀다. A씨의 아버지는 연이어 울리는 전화에 “아들이 시청 앞에서, 어제 교통사고 난 거, 그거로 죽었다”며 힘겹게 입을 열어야 했다. 사고로 A씨의 휴대전화가 심하게 파손된 탓에 고인의 친구들에게 일찍 연락을 돌리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A씨가 생전 어머니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낸 사진이 고인의 영정 사진이 됐다.

A씨는 가족 생계에 보탬이 되려고 휴일에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이모부는 “(조카가) 20대 때부터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살았고, 성격도 조용하고 묵묵했다”며 “평일에는 병원에서 용역회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돈을 모으겠다고 롯데월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말했다. 유족 B씨는 “제가 어렵게 산다고 저한테 돈을 보내주기도 하고, 자기 엄마한테도 월급을 다 갖다주는 가장 역할을 했던 조카였다”며 “정말 착하고 나무랄 데가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생전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A씨의 아버지는 “올해 같이 여행을 못 가서 며칠 전에 제주도를 가자는 얘기를 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문객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승진 날 변을 당한 박모씨(44)의 빈소 앞에서 만난 직장동료 C씨(56)는 “(박씨의) 부인은 세종에 있고 고인은 서울에 살며 주말부부로 생활했던 것으로 안다”며 “아침에 승진했단 연락도 받고 아내에게 연락도 했을 텐데,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세무과 직원 윤모씨(31)가 안치된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도 통곡 소리가 뒤덮었다. 윤씨의 어머니와 20년 지기인 서모씨(64)는 “너무나 착한 아들이고 전혀 손 갈 데 없는 친구였다”며 “최근엔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씨는 “어떻게 가라 그래? 아직 피어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가라 그래?”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오동욱 기자 [email protected], 이예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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