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없다”고 설교한 목사에게 벌어진 일

연극 ‘크리스천스’, 두산아트센터서 13일까지

까다로운 신학 논쟁을 흥미진진하게 풀어

“지옥은 없다”고 설교한 목사에게 벌어진 일

연극 〈크리스천스〉는 폴 목사(박지일)가 파격적인 설교를 하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렸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지옥은 없다”고 설교한 목사에게 벌어진 일

연극 〈크리스천스〉에서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조슈아 부목사(김상보)는 폴 목사의 설교에 반발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이 시작하면 무대를 둘러싼 4면 객석의 관객은 순식간에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다. 목사, 부목사, 장로, 신도들이 들어와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한다. 한국어 찬송가가 아닌, 영어 가스펠이라는 점만 특이하다. 관객도 함께 두 손을 모으고 눈 감고 기도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가 조금 특이하다. 20여년 전 작은 상가를 임대해 교회를 개척한 뒤 신도수 수천 명에 이르는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명망 있는 담임 목사 폴은 말한다. “지옥은 없다.”

폴 목사의 논리는 이렇다. 가장 선하고 숭고한 희생을 하며 죽어간 소년이 단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후 지옥 불에 고통받는다는 구원의 논리를 믿어야 하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이 가련한 소년을 지옥에 보낼 것인가. “우리가 가는 길 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독선의 논리를 세상에 설파해야 하는가.

설교는 파란을 일으킨다. 젊은 부목사 조슈아는 예배 중 대놓고 반박한다. 조슈아 부목사는 주말에 술집을 돌며 취객을 향해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경고하는 근본주의적 인물이다. 결국 조슈아 부목사는 폴 목사의 설교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신도와 함께 교회를 떠난다. 폴 목사의 설교가 일으킨 교회의 균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연극 〈크리스천스〉는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2011년 미국 미시간주 대형교회 마스 힐 바이블을 일군 저명한 목사 롭 벨이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 천국에 가고, 수십억 명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교계에서 퇴출된 사건이 이 희곡의 모티브였다.

장로 제이는 조슈아 부목사의 선교 재능을 아깝게 생각해 폴 목사를 설득하려 한다. 독실한 평신도 제니는 “벌을 받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지옥이 없다면 히틀러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폴 목사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당신이 말하는 ‘완벽한 너그러움’을 위해서는 너그럽지 않은 사람에 대해 너그러우면 안된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한다. 무엇보다 폴 목사가 설교한 시점이 교회 건축을 위한 빚을 다 갚은 날이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 파격적인 설교를 들은 신도들이 떠나가면 채무를 갚지 못할까봐 폴 목사가 철저히 계산된 시점에 설교를 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2시간 가량의 공연시간 동안 폴 목사는 무대를 떠나지 않은 채, 등·퇴장을 반복하는 여러 인물의 반박을 받아낸다. 관록의 배우 박지일이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단호한, 그리고 내면의 의심과 힘겹게 싸우는 폴 목사를 연기했다. 무대는 미니멀하다. 4면 무대가 십자 형태로 구성됐고, 그 위엔 스탠드 마이크 두 대만 있다. 시각적 효과나 배우들의 동작보다는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나 반응으로 이어가는 연극이다. 까다로울 수 있는 신학적 논쟁이 이어지지만, 적절한 사례가 등장하고 오가는 대사가 잘 다듬어져 있어 이해가 쉽고 지루하지 않다.

〈크리스천스〉는 신학 논쟁에 대한 연극만은 아니다. 믿음을 위해 타인과 싸우고 갈라서길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돌아서면 흔들리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핀 라이트에 몸을 반 정도만 드러낸 채 이어지는 폴 목사의 마지막 독백은 내면의 고독과 회의를 극대화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민새롬 연출은 “이 연극은 특정 종교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속할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모순, 분열, 소통, 화합의 고통스러운 국면들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13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지옥은 없다”고 설교한 목사에게 벌어진 일

연극 〈크리스천스〉는 십자 형태의 무대를 사면의 관객석이 감싼 채 진행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백승찬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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