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은 평등하다

땀은 평등하다

운동하는 여성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에서 여성 체육 인구가 폭발하듯 증가하고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된 것은 운동장에 진입하지 못한 여성들의 한풀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박승화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땀은 축복이다. 인간을 살게 한다. 땀이 없었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토하거나 배설하면서 체온을 조절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약 3만5000년 전부터 몸의 수분을 증발시켜 체온을 식히는 쪽으로 진화했다. 땀은 인간 체온을 유지하는 정교한 장치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항온 동물로서 인간에게 땀은 중요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에게 과도한 땀은 곤경을 선사한다. 공공장소나 격식을 차린 모임에서 땀을 지나치게 흘리는 사람들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다한증을 가진 이들은 필기도구, 휴대폰, 수저, 공구를 쥘 때조차 힘이 든다. 악수하기 전에 손바닥의 땀을 미리 닦아두는 등 상호작용 의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수술로 다한증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후 보상성 다한증에 유의해야 한다. 다한증 부위의 교감신경을 절제했을 때 다른 곳의 땀이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땀에는 장사가 없다. 성별도 가리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지만, 연구 결과 성별과 무관하게 덩치가 클수록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저 문화적으로 여성이 땀을 덜 흘리는 것처럼 여길 뿐이다. 다만 성호르몬에 따라 땀의 성분이 달라진다고는 한다. 호르몬제를 먹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취도 바뀐다.

땀에는 개인 정보가 다수 들어있다. 알코올 관련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금주를 조건으로 가석방되었을 때 미국에서는 땀 모니터링 장치인 ‘스크램 캠’(scram cam)을 부착한다. 발목에 차는 기구를 통해 국가가 연중무휴로 30분마다 개인의 땀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셈이다. ‘땀의 과학’을 쓴 과학 저널리스트 사라 에버츠는 국가가 국민의 땀을 추적, 관리하면서 국민건강보험 보장범위를 정하는 등 정책적으로 활용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했다. 웨어러블 기계를 통해 활동량, 심박수, 케이던스(걸음수)를 체크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미 적지 않다. 인공지능이 인간 개개인의 땀을 분석하고 건강과 활동을 통제하는 빅브라더 국가가 별다른 저항 없이 눈앞에 당도할 수도 있다. 얼마 전엔 땀으로 여성의 생식 호르몬을 측정할 수 있는 반지 모양의 웨어러블 바이오센서가 개발되기도 했다. 이런 바이오 기술과 파놉티콘(원형감옥)의 통치기술이 결합된다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인구관리 체제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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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1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코로나위기대응 간호사 간담회에서 레벨D방호복을 입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공동취재사진

오래전부터 국민의 땀은 국가 발전의 동력을 상징했다. 근대 이후 이상적인 국민은 땀 흘리며 군말 없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젊고 건장한 노동자였다. 해방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의 땀을 가장 열렬히 원했던 위정자일 것이다. “조국은 땀과 인내, 희생을 요구한다”(1973년 6월6일 현충일 추념사) “의지와 땀으로 보람찬 미래를 창조하자”(1979년 1월1일 신년사) 등 박 전 대통령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땀 흘리며 일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정당한 땀의 대가를 요구한 국민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했다.

박정희의 딸로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박근혜 역시 ‘영애’ 시절 아버지에 뒤질세라 ‘여성의 땀’을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여공 앞에서 “여러분의 정성과 땀은 국가 건설의 디딤돌”이라고 치하했다.(1978년 6월1일 ‘새마음갖기대회’ 격려사) 하지만 국가와 자본은 ‘공순이’를 경멸하고 탄압하고 착취했다. 1978년 2월21일,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투쟁 당시 회사의 편을 든 남성 직원들은 민주노조를 만든 여공들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웠다. 여공들은 붙들려가지 않으려고 옷을 벗었다. 사력을 다해 버티는 그들의 얼굴에서 땀과 눈물이 흘렀다. 1979년 7월, 해태제과 여성노동자들은 잠 쫓는 약 ‘타이밍’을 먹고 졸음을 참아가며 하루 12~19시간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다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회사 쪽의 남성 기사들은 갖은 쌍욕을 퍼부으며 무자비한 폭력사태를 일으키며 여공들을 협박했다. 노동기계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임을 선언한 순간 여공들은 “산업화를 저해하는 빨갱이”가 되었다. (‘공장과 신화’,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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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복직 투쟁 당시 아이를 데려온 여성노동자(왼쪽)와 똥물을 뒤집어쓴 여공들. 한겨레 자료사진

국가에 헌신하는 여성의 땀을 떠올릴 때 최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코로나19 당시 간호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무더운 한여름 방호복을 입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환자를 돌본 이들에게 ‘케이(K)-방역의 주역’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후 불합리한 의료체계의 보조 인력 정도로 머무는 간호사들의 업무를 시대에 맞게 수정하자고 목소리를 내자 ‘간호사들 뒤에 또 다른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란 비난이 속출했다. 갖가지 허들을 뛰어넘고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국가는 필요할 때 여성의 땀과 희생을 칭송하며 천사에 빗대지만 비상상황이 지나고 변화를 요구할 때는 이들을 불온한 세력으로 몰아간다. 땀 흘리는 일터에서 ‘페미’(페미니스트)라는 딱지라도 붙은 여성노동자는 그야말로 희대의 마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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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초 로마 시대에 지은 초대형 빌라 바닥의 모자이크. 여성들이 오늘날 비키니와 유사한 차림새로 공놀이를 즐기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땀은 노동 운동, 사회 운동뿐 아니라 신체 운동의 역사와도 함께한다. 4세기 이탈리아 바닥 모자이크를 보면 비키니를 입은 채 운동에 열중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운동은 남자의 것이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에서 여성 체육 인구가 폭발하듯 증가하고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된 것은 운동장에 진입하지 못한 여성들의 한풀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여자치고 잘 뛰네’를 쓴 미국의 여성 달리기 선수 로런 플레시먼은 동년배 남자아이들에게 뒤지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 여성 운동선수의 몸이 거의 부상에 맞먹는 좌절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설상가상 여성 선수는 승리를 위한 스피드와 근력, 지구력 향상에만 몰두할 수도 없다. 경기력 증진과 함께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신체 이중성’(body duality)을 느끼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여자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 땀이 날 때 흘러나오는 고약한 체취가 있다. 액취증은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사춘기 때 발현되기 시작한다. 악취 나는 ‘겨땀내’(겨드랑이 땀 냄새)를 가리키는 ‘암내’는 땀의 성별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암내를 ‘암컷의 몸에서 나는 냄새. 발정기에 수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사실 암내라는 단어는 동물보다 인간에게 쓰는 수가 더 많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액취증과 암내를 같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은 이의를 제기한다. 암내라는 말에는 여성의 성적 방종을 향한 지탄과 멸시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최 작가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활달하고 운동을 좋아해서 남자아이들을 다 이겨먹는 활동적인 성격이었지만 사춘기 이후 아버지가 물려준 액취증 탓에 혼자 떠돌면서 오랫동안 “자괴감과 수치심과 모멸감의 무저갱”을 겪었다. 나이가 들면서 최 작가는 ‘냄새나는 사람’인 노인과 노숙인들 속으로 가 그들의 생애를 기록했다. 최현숙의 치열한 글은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체제 밖 존재가 온몸으로 내뿜는 강렬한 반역의 기록이 되었다.

사춘기 여성들이 동년배 남성과 다른 육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일종의 ‘추락’을 경험한다면, 갱년기 여성의 몸은 거의 ‘벼락’ 맞듯 달라진다. 뜨거운 것을 먹거나 운동을 한 일이 없는데도 느닷없이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다. 자다가도 물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우울증은 극에 달한다. 그래서 갑자기 종교기관을 찾거나 절그럭거리는 중년의 관절을 달래가며 격렬한 운동을 시작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집안의 천사, 또는 사회적 마녀로 낙인찍힌 울분과 맘속 천불을 격렬한 운동으로 다스리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수분을 흘려보낸다.

지체장애인으로 인권활동가이자 연구자인 변재원은 ‘신체 운동’과 ‘사회 운동’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2024년 6월24일, ‘한겨레’) ‘나쁜 장애인’으로 유명한 전국장애인자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와 만나 활동가가 된 그는 장애인을 꺼리는 체육관에 입장할 권리를 외치면서 들어가 운동했다. 신체 운동과 사회 운동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사회적인 문제이고, 두 가지 운동은 어디서나 중요하다.

성별과 장애가 걸림이 되지 않는 평등한 운동장, 흐르는 땀에 온몸이 젖어 운동복이 달라붙을지라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체육관,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뒤 깨끗한 물로 몸을 씻어내고 잠시라도 휴식할 수 있는 일터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땀 흘리는 모두가 당연한 세상이라면, 어디서든 사랑과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땀은 평등하다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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